(살과 신앙의 의문을 찾아서) 1편 : 불공평한 세상속의 공평하신 하나님의 역리
성경: 마 13:24-30
송병주 목사 (선한청지기교회)
A. 전제: 끊임없이 우리에게 남는 질문
우리에게 끊임없이 남는 질문이 있습니다. “어떻게 공평하신 하나님이 불공평한 세상을 만드시는가?” 입니다. 누구는 이런 경제위기에도 잘만 된다고 하는데, 왜 나는 이런 경제위기가 발생하면, 전문가들이 예상하는 모든 어려움을 다 겪어야 하는지 알 수 가 없습니다. 그래서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항상 고통이 이중삼중으로 덥쳐오는지 이해할 수 가 없습니다. 남들은 잘 사는데, 나만 유독 죽어라 고생하는 것 같은 생각에 참 마음이 힘듭니다. "행복은 천천히 다가오고 불행은 한순간에 다가온다. 행복은 한순간에 사라지고 불행은 천천히 사라진다."는 말이 늘 사실처럼 여겨지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학창시절 꿈많은 여고시절에 김양, 이양, 그리고 박양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보다 공부도 못하고 미모도안되던 것들이 “싸모님” 소리 듣는데, 왜 나는 “아줌마” 소리를 들어야 하는지 답답할 때가 많습니다. 왜구는 "사모님 키 주시죠. 차는 제가 옮기겠습니다."는 소리를 듣는데, 왜 나는 "아줌마 차 빼요." 하는 말을 듣는지 알 수 가 없습니다. 왜 똑 같이 학교 다녔는데, 누구는 사장님 소리 듣고 왜 나는 아저씨 소리를 들어야하는지 답답할 때가 많습니다.
무엇보다 힘든 것은 하나님이 근본적으로 내 인생을 이렇게 만들어서 그런 것이 아닌가하는 의구심에 대한 답이 없다는 것입니다. 왜 내 인생은 사글세 전세를 전전하는 집에 태어나서, 아버지가 빨리 사고로 돌아가시고, 장애에 걸린 동생에 대한 책임까지 진채, 시댁 가족들 눈치보며 하고 싶은 말 한다디 못한채 가슴에 한을 품고 살아야 하는지... 그래서 이런 삶을 하나님이 처음부터 계획해두셨다면, 참으로 원망스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불공평하게 만들어 놓으셨는데 어떻게 하나님을 공평하다고 할 수 있을지 깊은민이 있습니다.
오늘 읽은 이 비유는 우리의 이런 고민에 대한 작은 대답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불공평한 현실이 왜 생기게 되었고, 그 속에 가득한 긴장이 무엇인지... 그리고 하나님 나라가 완성되는 날까지우리가 부딪히고 겪어 나가야 할 싸움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이 비유에 대한 깨달음을 통해 불공평한 현실 앞에서 하나님은 공평하시다는 고백을 가슴으로 할 수 있는 감격을 누리게 되길 소망해봅니다.
B. 전제: 우리는 좋은씨앗이며 주인의 밭에 뿌려진 존재들입니다.
먼저 우리가 가져야 할 중요한 전제가있습니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주인은 우리를 불행하게하고 괴롭히는 것이 목적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즉, 우리를 좋은씨앗으로 삼아 당신의 밭에 뿌려모두가 풍성한 열매를 맺는 것을 원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를 위해선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24절)”을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힘들고 어려운 현실을 겪으면서 "나는 근본적으로 종자부터 글러 먹었다"는 깊은 자괴감에 빠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본적으로 내 인생을 잘못 디자인하셨고, 소위 "싹수부터 틀려먹었다"는 생각입니다. 다른 사람들과 전혀 다른 삶의 자리와 환경으로 인해 자신은 첫단추부터 잘못 되었다는 생각으로 깊은 낙망에 빠지거나 나보다 나은 것을 향한 혐오감에 빠집니다. 우리는 이것을 "상대적 박탈 보상심리"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조물주의 실패작처럼 스스로 저주 받은 인생으로 여기며 낙망과 분노의 감정사이에서 표류하는 것입니다.
이 점에 있어서 우리는 관점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실패작도, 저주받은 계획속에 존재하는 버림받은 고아도 아니라, 우리 모두는 근본적으로 "좋은씨앗"임을 오늘 비유는 분명코 밝히고 있습니다. 우리는 버림받은 존재들이 아니라 주인이 고르고 선택하여 당신의 밭에 뿌린 좋은 씨앗입니다. 그리고 그 밭에서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해 우리를 심으셨다는 것을 먼저 전제해야 합니다. 삶이 우리를 속이고 아프게 한다고 해서 나의 존재 자체를 부인할 필요는 없습니다. 내 형편과 상황이 어떻다 할찌라도 우리 모두는 좋은 씨앗으로 하나님이 고르고 선택하신 존재들입니다.
C. 문제의 시작: 원수가 가라지를 뿌렸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합니다. 원인이 무엇일까요? 이 아름다운 주인의 밭에 좋은 씨앗들이 뿌려져 있는데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것은 주인이 글러먹은 종자를 뿌린 것이 아니고, 밭에 병충해가 가득해서도 아니라,밤에 원수가 와서 가라지를 뿌리고 간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25절에서 보듯이 원수가 뿌리고 갔고, 39절은 그 원수가 마귀라고 말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삶의 문제의 시작은 하나님의 잘못된 디자인과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의 확장을 훼방하기 위해 당신의 천국의 자녀들을 쓰러뜨리기 위해 원수가 뿌리고 간 가리지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 안에도 끊임없는 고통과 갈등이 있슴을 알아야 합니다. 대체로 우리가 하는 오해는 하나님 나라가 강해지면 사단의 권세가 약해지는 "반비례 관계"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겪어보면 하나님 나라가 강성해질수록 사단의 권세역시 강해지는 "비례 관계"라는 것입니다. 마지막이 다가오고 추수가 다가올수록 가라지는 창궐하며 영적 전쟁은 피부로 와 닿습니다. 우리는 이 긴장과 갈등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생기면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게 될까요? 27절을 보면, 주인을 밭에서 일하는 종들의 반응이 보입니다. 27절 “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면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이런 일이 생기면 사람들은 이 모든 것이 주인의 문제인 것으로 생각하여 주인을 원망한다는 것입니다. 원수가 가라지를 뿌리고 가서 생긴일인데, 사람들은 주인이 근본적으로 씨를 잘못 골랐거나 파종을 잘못해서 생긴문제로 생각하여 주인을 탓하고 원망한다는 것입니다.
C. 의미정리: 가라지의 공격은 하나님의 기쁘신 뜻이 아니라 사단의 기쁘신 뜻의 결과입니다.
많은 분들이 그래서 고통스러워합니다. “하나님이 왜 내 인생을 이렇게 만드셨을까?” 그러나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이 우리에게 사랑하는 사람을 잃게하고, 이혼을 당하게 하고, 교통사고로 장애인이 되게하고, 그래도 믿음으로 인내하고 버티도록 해서 악으로 깡으로 찬양하도록 근본적으로 계획하신 것이 아닙니다.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결단코 하나님의 뜻은 기쁘시고 선하시고 온전하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뜻은 애매하고 모호하며 잔인하다 할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주인은 모든 좋은씨앗들이 좋은밭에서 가라지의 고통없이 잘 자라기를 근본적으로 원하셨습니다. 그것이 기쁘신 뜻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신앙생활이 너무 평범하고 평탄했다고 칩시다. 그래서 내 자녀들은 신앙생활에 감격이 넘치고 간증이 있는 삶이 되게 하고 싶어서 인생살이 화끈하도록 계획 잡아주시겠습니까?“아들아 아빠는 너무 평범한 삶을 살아서 인생에 드라마틱한 즐거움이 없더구나. 그래서 간증할 것도 없고… 그래서 나는 네 인생을 이렇게 디자인했다.어릴때부터 조폭세계에 들어가라. 그래서 칼도 2번 맞아보고, 마약으로 몸 망가지고, 술먹고 운전하다 갈비뼈 다 부러지는 경험도 진하게 해 보아라. 대신에 아들아 절대 죽지는 않도록 보장하지만, 죽을 고생은 하게해주마. 그러면, 넌 나처럼 재미없는 인생이 아니라 의미심장한 인생이 될 것이다. 간증도 넘치고 찐하게 눈물나는 신앙생활 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이정도 대가는 치루어야 되지 않겠니?” 만약 이렇게 말한다면 여러분의 아들은 무엇이라 말할까요? … 하나님이 만약 이렇게 하셨다면, 그것은 기쁘신 뜻이 아니라 잔인한 뜻이지요. 하나님은 결코 그런 식으로 우리 인생을 향해 계획하지 않으십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 삶에 밀려드는 공격은 원수가 뿌린 가라지의 공격의 결과입니다. 하나님의 어처구니 없는 애매하고 모호하며 잔인한 하나님의 뜻 때문이 아니라, 사단의 기쁘신 뜻의 결과입니다. 물론, 인자의밭에 뿌려진 좋은씨앗도 뜨거운 여름과 폭풍후와 가뭄과 홍수를 이겨야 합니다. 좋은 씨앗으로 심어졌다고 해서 이런 고난이 없다는 말은 결코 아닙니다. 하지만, 어처구니 없는 각종 범죄와 죄악의 희생양이 되도록 하나님이 직접 디자인하신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단의 권세와 죄악이 우리를 공격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기쁘신 뜻이 아니라, 사단의 뜻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혼돈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어쩌면 사단의 목적은 우리의 고통이 아닙니다. 그 고통을 통해 사단이 원하는것은 이런 공격을 통해 하나님을 의심하고 원망하게 만드는 일, 불공평하게 보이게 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고통의 원인제공은 자신이 했으면서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원망하도록 하여 사단이 우리의 친구행세를 하며 우리의 영혼을 노략질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분명코 말씀드리면, 사단은 하나님의 불공평한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일에 전문가입니다. 천재적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사단은 밤에 와서 가라지를 뿌릴때, 씨를 뿌리듯이 차곡 차곡 파종하듯 뿌리지 않습니다. 그냥 적당히 쑥 뿌려버립니다. 씨앗마다 3개 간격으로 가라지를 차곡 차곡 뿌려놓으면, 모든좋은 씨앗이 죽을 고생을할텐데, 절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사단은 모든 천국의 자녀들을 골고루 고통스럽게 하는 것을 절대 목표로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공평하게 보일텐데, 미쳤다고 그렇게 하겠습니까? 가라지는 골고루 뿌려지지 않습니다. 아무데나 뿌립니다. 어떤 곳은 집중적으로 더 많이 뿌려지기도 하고, 어떤 곳은 거의 안 뿌려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하나님은 한없이 복을 주시고, 누군가에게는 한없는 저주를 주신 것처럼 보여서 철저하게 하나님이 불공평하신 분으로 보이게 하는 것이 사단의 목적인 것입니다.
무슨 뜻인지 아시겠습니까? 사단은 바로 철저하게 하나님 하시는 일이 불공평하게 보이게 하는 것을목표로 합니다. 불공평으로 가득한 세상을 만들어서 하나님이 너무나 부당하고, 원칙도 없고, 불공평하게사람들을 괴롭히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고통을 절대 골고루 겪게 하지 않겠다는것...” 그래서 서로가 서로를 원망하고, 그래서 주인이 한 모든 일을 원망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원수가 노리는 목표인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사단의 기쁘신 뜻 때문에 고통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기억하십시오. 주인은 당신의 밭에 가라지를 뿌리신 것이 아닙니다.
D. 의미정리: 사단의 망쳐놓은 것조차 은혜로 만드시는 하나님의 은혜
하지만, 이런 상황속에서 하나님은 어떻게 하십니까? 사단은 하나님이 행하고 계신 아름다운 일을 항상Messed up 시켜버립니다. 하지만, 그 엉망이 되어버린 모든 상황속에서도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의 원망을들으면서도 그 밭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사단이 망쳐 버린 밭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온갖 욕을 먹으면서도 추수때까지 끝까지 그 밭을 지키시며, 한 알곡이라도 끝까지 끌고 가시는 분이라는 점입니다.
끊임없이 사단은 하나님의 기쁘신 뜻이 불공평하고 잔인하게 보이게 하기 위해 망쳐 버립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사단이 망쳐버리고 인간도 실망하과 낙담한 곳에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이런 우리를 붙들어 세우신다는 것입니다. 한 알곡이라도 상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으셔서 원수가 망치고 내가 망쳐버린 그 밭에서 지금도 여전히 추수의 꿈을 꾸시며 우리를 포기하지 않고 붙들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나에게 문제가 없다고 해서 나는 특별히 남들보다 뛰어난 존재라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저밤에 가라지를 뿌리러 온 원수가 내 쪽으로 안 던진 덕택이지, 내가 잘나서가 아닙니다. 동시에 가라지로인해 고통당하는 분들 역시 기억하십시오. 죄가 많아서 그렇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다고 생각하지도 마십시오. 왜 이렇게 세상이 불공평하냐고 하나님을 원망하지 마십시오. 불공평하게보이는 세상을 통해 하나님을 원망하게 만들려는 사단의 계획일 뿐입니다. 하지만, 정말 가슴에 새겨야 할일은 이런 상황속에서도 하나님은 한 알의 알곡도 포기 하지 아니하시고, 원수가 망쳐놓은 곳에서 우리를여전히 사랑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처럼 포기하지 않는 사랑을 우리가알게 되었을때, 그 지옥같은 순간들을 보내고서도 우리가 세월이 지나서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그때의 교통사고도, 씻을 수 없는 상처도, 이런 몸뚱아리로 태어난 것도, 이런 집구석에서 그렇게 살아온것도, 나의 실패와 좌절도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무슨 말입니까?하나님이 원래 나를 망쳐 놓으신 후 만들어 오신 것이 아니라, 사단이 망쳐놓아서 만신창이가 된 우리를 붙들고 인도해 오셨기에 그때의 고통과 좌절이 오히려 은혜라고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보다 가장 고통스러운 절망적인 순간을 보낸 사람들이 오히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아름다운 계획이셨습니다.”고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의미를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만신창이로 만드신것이 하나님의 계획이 아니라, 사단이 만신창이로 만들어 버린 나를 붙들고 그 길을 이루게 하셨기에“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아름다운 계획이었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마치 형님들 앞에서 요셉의 고백처럼 "당신들이 나를 판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코자 저를 먼저 보내신 것이었습니다."는 고백이 터져나온 것처럼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사단은 디딤돌조차 걸림돌로 만드는데 천재적이지만, 하나님은 걸림돌을 디딤돌로 바꾸시는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사단이 망쳐놓은 모든 것을 포기하지 않고 붙들어 그 은혜로 인하여 절망을 은혜로 승화시키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또한 이 믿음의 자리로 들어가야 합니다. 절망을 은혜로 고백하는 믿음의 백성이 될때 우리는 중증 뇌성마디 송명희 자매가 최악의 불공평의 자리에서 "공평하신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듯 승리하게 될줄 믿습니다.
E. 결론 - 마지막 때의 모습을 그려보자.
불공평으로 가득한 세상속에서도 “공평하신 하나님”을찬양하게 되는 것입니다. 불공평한 세상속에서도 “나의 나된 것은 다 하나님 은혜라”고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싸움이 얼마나 지겹고 힘드십니까? 도데체 언제까지일까? 이 지겨운 가라지와의 싸움이 영원할 것처럼 여겨질때가 얼마나 많으십니까? 하지만, 그날은반드시 옵니다. 내 눈물과 설움과 절망이 끝이나고 하나님의 승리가 임하여 내가 주님의 곡간에서 안식하며 그 가라지가 풀무불에 던져서 심판받을 날은…반드시 옵니다. 지금… 너무 힘이 드시지요? 그러나 약해지지 마십시오. 한톨의 곡식이라도, 한 명의 당신의 백성이라도 잃어버리지 않고 싶으셔서 사단이 불공평과훼방으로 망쳐 버린 밭이지만, 그 모든 현실을 끌어안고 주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래서 기필코 승리는 우리의 것입니다. 우리는 기필코 승리할 것입니다.
저는 여기서 우리 주님을 생각합니다. 우리가 고생할때주인은 무엇을 하실까? 가만히 묵상해보니 주인은 할일없이 시간 가기를 기다리고 우리는 죽을 고생을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주인은 무엇을 하고있을까요? 가라지로 가득한 밭을 보며, 우리 주인은 수많은 사람들의 비난과 조롱을 받아야 했습니다. 1년 농사 망쳤다는 이야기부터… 그리고 더힘든 이야기가 한가지 더 있습니다. 만약 경제논리의 관점에서,농부로서 자신의 체면과 위신의 관점에서 보면 빨리 가라지를 싹 정리해야 했습니다. 남들이 보기전에 곡식들이 다치든 말든 가라지를 싹 정리해버렸어야합니다. 하지만, 우리 하나님은 한알의 곡식이라도 잃어버리지 않고싶으셔서 체면과 위신 구겨지더라도 참고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래서 자기 밭도 똑바로관리못하는 형편없는 주인취급을 당해야 했습니다. 종자부터 잘못 뿌리더니 게을러서 김매기도 안하고 가라지 정리도 안한다는 모든 비방을 받아야 했습니다.체면이 구겨지고 경제적 손실이 올 일이지만 기다리셨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의 백성을 하나라도 더 잃지 않기 위해서…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이런 분이십니다.지금도 욕을 바가지로 먹고 계십니다. 하지만, 연약한 우리 때문에 지금도 묵묵히 그날이 오기를 우리 보다 더 기다리고 계십니다.
41-43절을 우리는 꼭 읽어보아야 합니다.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그렇습니다. 추수때까지 그 모든 싸움을 마치고 견디신 여러분에게, 하나님은 약속하십니다. “그 때에 의인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그 때에 의인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우리의 주인이 기다리심같이그 기다리심에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가만히 고개 끄덕일 그날을 기다리며 사단이 준 걸림돌조차 디딤돌로 바꾸시는 삶이 되시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