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llful hands & Integrity

예배 탐방을 시작하며

양치는선비 2009. 9. 18. 09:38

    

  1. 들어가는 말

    목사로서 주일예배를 다른교회에 가서 섬길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은 쉽지 않은 기회이다. 하지만, 내 인생에 모처럼 만에 휴식기를 통해 다양한 예배의 현장을 방문하는 기회가 주어졌다. 남가주의 큰 교회들을 모처럼 만에 방문했다. 고민을 했다. 큰 교회가 예배의 모델이 아닌데 너무 큰 교회의 규모와 웅장함만을 보다가 실질적인 방향을 찾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하지만, 큰 교회가 가지고 있는 소위 "잘 디자인 된" 모델을 좀더 다양하게 보고 싶었다. ANC 온누리교회를 통해 큰 교회 예배가 가진 장점을 잘 알지만, 다른 교회들은 특징을 살펴보면서 예배의 동향과 흐름을 보고 싶었다. "날카롭고 따뜻한 눈"으로 살펴보고 싶었다. 앞으로 더욱 예배에 대한 철학을 세우가는 좋은 계기가 되길 기대하며 나누고자 한다.

     

  2. 예배에 대한 기대감

     

    1. 잘 준비된 기획과 성령님의 자유로운 touch의 공존

       구약에서 성전과 성막을 세울때 하나님은 "너무나" 상세한 디테일까지 적어 주심으로 "잘 계획된 프로그램" 그대로 하도록 하셨다. 제사를 위해서 각을 뜰때 어떤 부위를 사용해야 하는지, 기름은 어디를 떼어내고, 어떤 것은 버릴지, 양은 얼마나 할지… 너무나 상세하게 한치의 빈틈 없이 시행하도록 하셨다. 그런점에서 하나님은 예배에 있어서 "철저한 기획가"셨고, 그대로 하기를 원하셨다.

      하지만, 철저한 기획가셨던 하나님이시지만, 피를 흘리는 제단만큼은 "정으로 쪼지 않은 돌"로 쌓으라고 하셨다. 소위 멋지게 잘 만들려면 정으로 잘 쪼아 돌 무더기를 만들어야 하는데, 철저하게 가공되지 않고 인위적이지 않은 돌로 쌓게 하셨다. 그것은 우리의 예배에 성령께서 마음껏 역사하실 수 있는 Room을 가지라는 하나님의 의도다. 철저한 기획자가 요구한 "하나님의 자유로움"이 공존하는 예배를 하나님은 원하셨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2가지 성격을 결합하고 싶다. 인간의 게으름을 하나님의 주권으로 합리화하지도 않으면서, 우리의 계획으로 성령의 역사를 조작하지 않는 예배에 대한 소망을 가져본다. 공교한 준비와 성령의 역사가 공존하는 예배, 곧 "Worship, well designed by people and having room filled by God"를 기대해본다.

       

    2. 테레사 수녀와 아브라함 카이퍼의 공존

       테레사 수녀는 십자가의 길에 대한 상징이다. 그녀를 통해 나타난 예수님은 왕으로서 모습보다 고난받는 종으로서 모습이다. 그래서 예배를 통해 성도들에게 십자가를 감당하는 삶을 결단하고 걸어가게 한다. 고통중에 즐거워하는 고백을 통해 쏟아지는 "눈물이 있는 예배"가 드려진다. 이것을 잃어버릴때 예배는 "승리주의의 함정"에 빠지게 된다.

      아브라함 카이퍼는 왕으로 우뚝선 예수의 모습을 드러낸다. 카이퍼는 왕으로 서신 예수님이 세상을 통치하는 비전을 보인다. 그래서 예배를 통해 죄와 싸워 승리하고 세상을 회복하는 "전사로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세상가운데 서게하는 헌신이 있다. 그래서 "환희와 열정이 있는 예배"가 드려진다. 이것을 잃어버릴때 "패배주의의 함정"에 빠지게 된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이 2가지가 결합된 예배를 기대한다. 승리주의도 패배주의도 극복하여 "고난받는 종"으로서 "승리하신 왕"으로서 예수님이 예배가운데 나타나길 기대해본다. 그래서 고난도 두려워하지 않고, 승리가운데 서는 백성들이 예배가운데 일어나는 것을 소망해 본다.

       

    3. 드림과 받음의 공존

       예배는 반드시 하나님앞에 드리는 것이 우선이다. 소위 "은혜 받으려 드는 욕구"가 동기가 될때, "은혜 주려는 조작"이 개입하기 때문이다. 예배자는 내 기분에 합당한 찬양과 예배를 드리지 않고, "찬양받기에 합당하신 하나님"앞에 먼저 서야 한다. 예배의 중심은 사람이 "은혜받기를 갈구하는 사람"이 아니라, "경배 받으시는 하나님"이심을 전제해야 한다.

      동시에 기억할 것은 하나님은 인격적이기에 그분이 기뻐하실때, 그 기쁨은 반드시 우리에게 전이된다는 점이다. 아름답게 "드려진" 예배는 반드시 "감격스런 은혜받음"이라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은혜 받을 수 없다면, 드려진 예배가 온전하지 않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믿음과 행위의 관계처럼, 예배의 열매는 우리가 받는 은혜에서 알 수 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이 2가지가 공존하는 예배를 드리고 누리고 싶다. 그러나 이것은 반드시 순서가 필요하다. 받음이 전제가 아니라 드림이 반드시 전제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마음과 힘과 정성을 다해 드려지고, 충만한 은혜가 넘치는 예배가 일어나는 것을 소망해본다.

        

  3. 마무리하며

     다음 장부터 교회를 방문하며 느낀 예배의 구조와 형식, 찬양의 특징을 나누겠다. 필자는 우선 위의 3가지 관점을 견지하면서 평가하며 균형을 찾는 노력을 감당하고자 한다. 예배를 평가한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는 것을 알지만, 그리고 스스로 얼마나 훌륭한 예배를 준비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지만, 그저 고민과 모색이라 여겨주며 열린 마음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