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위대함과 소박함

양치는선비 2011. 3. 6. 05:27

양치는선비 송병주

  너무나 쉽게 우리는 위대함에 대해 말해 왔었습니다. 위대한 사명, 위대한 소명, 위대한 비전그래서 그 위대함에 대한 추구가 교회를 더욱 크고 강력하게 영향력있게 만들어 갈 것이라는 희망을 가졌습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언필칭 그 원대한 비전과 사명이 얼마나 손쉽게 욕망으로 변질될 수 있는 것인지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더욱 이제 당연과 물론으로 여겨왔던 위대함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해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20주년을 맞으며 위대한 비전을 선포하는 것보다 소박한 꿈을 나누는 내려놓음이 필요하다 싶습니다.


굉장한 맛은 아니었지만 그럭..

하나님 나라의 원대한 비전을 논하기 전에 함께 차린 밥상을 나누며 "식구"임을 먼저 발견하는 소박함이 필요합니다
. 화려한 예루살렘의 위대한 유산을 내려놓고 광야로 나아가는 주님 오실 길을 예비하는 소박함이 필요합니다. 위대한 메시야의 소명을 논하기 이전에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자라"는 아버지의 음성을 듣는 아들의 소명에 서는 소박함이 필요합니다. 이민역사에 남는 교회를 세워보겠다는 남다른 교회를 세워보겠다는 거창함보다 하나님 나라의 한 모퉁이라도 잘 감당하고 싶은 바로 그 소박함 말입니다.

물론 촌스럽고 어설프고 최선을 다하지 않은 게으름과 나태함을 소박함으로 위장하는 또다른 자기 속임수는 없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는 창조의 하나님처럼 비범함이 있어야 합니다. 결코 소박함은 덜 준비된 자의 자기 합리화가 되어선 안됩니다. 소박함을 추구하는 삶이야 말로 더 치열하고 더 고민하는 일입니다. 더 아파야 하고 더 힘을 써야 합니다. 왜냐하면 상류를 찾아 폭포를 뛰어넘는 연어와 같은 거스름의 도약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소박함을 추구하는 삶은 흐름을 잘 타는 삶이 아니라 흐름을 거슬러 뛰는 삶을 결단하기 때문입니다.

교회 설립 20주년을 맞으면서 잘하는 것보다 바른 것을 더 많이 묵상했으면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참으로 이웃 청년 같으셨습니다. 함께 먹으셨고, 함께 우셨습니다. 첫 사역도 위대한 기적이기 보다 혼인잔치 포도주 준비해주는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위대함이 있었습니다. 사람의 형상으로 몸을 입는 순간부터 그분은 위대함을 포기하심으로 위대함을 이루시는 분이셨습니다. 소박함을 멀리함으로 위대함을 이루는 삶이 아니라 소박함을 입음으로 위대함을 이루시는 분이셨습니다.

아시죠? 우리의 작음을 알때 그 분의 크심을 고백하게 되는 것 말입니다. 이 세상 가운데 주님이 자꾸 초라하게 여겨지는 것은 우리가 너무 커서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분의 크심은 우리의 큼을 통해 나타나지 않습니다. 우리의 작음을 알때 그분의 크심이 나타날줄 믿습니다. 위대함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위대해 지려는 것이 문제겠지요. 위대해 지려고 안 했으면 합니다. 그저 우리는 우리의 작음을 아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위대함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입니다.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청년사역: 강건너 불 or 발등이 불  (0) 2012.05.12
연약함과 완악함  (2) 2012.04.13
브리스길라가 아름다운 4가지 이유  (8) 2010.09.15
변질  (1) 2010.05.04
가장 간절한 기도  (4) 2010.0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