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설교

예레미야20장1-6절 / 두 갈래길에서 "예레미야의 길 vs. 바스훌의 길"

양치는선비 2010. 5. 21. 09:28

생명의삶 QT노트 

 

두갈래 길 앞에서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2명의 예언자가 걸어가는 유사하지만 전혀다른 2갈래 길을 볼 수 있다. 성전의 감독관이었던 바스훌과 열방의 감시자였던(1:10)였던 예레미야, 평강의 예언자였던 바스훌과 심판의 예언자였던 예레미야의 2갈래 길을 보게 된다. 우리 인생 앞에도 항상 두갈래 길이 있다. 예레미야의 길과 바스훌의 길그 두갈래 앞에서 우리의 신앙은 결정된다. 주의할 것은 이것은 불신의 길이냐 신앙의 길이냐가 아니다. 신앙의 길을 걷고 있는데, 선지자의 길, 제사장의 길을 걷고 있다면 당연히 예레미야의 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해다. 이 두 갈래길은 신앙인과 불신앙인의 두 갈래길이 아니다. 신앙인으로서 선지자로서 신앙의 지도자로서 어떤 두 갈래의 길을 선택할 것인가를 질문하고 있다. 물론 영혼의 구원의 문제를 가르는 길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한 나라와 민족과 신앙 공동체의 운명을 가르는 두갈래 길이라는 심각함을 알아야 한다.

 

두갈래길의 비교

바스훌이 걸어간 길은 하나님의 권세는 없지만, 더 큰 세상의 권세를 가졌다. 하나님이 세우신 열방의 감시자를 가둘 수 있었고 폭력을 행세할 수 있었다. 하나님이 세우지 않았지만, 성전의 감독관이 되어 사람을 가두고 폭력을 행세할 수 있는 권력과 힘과 권세와 부귀를 가진 길이다. 하지만, 예레미야가 걸어간 길은 세상의 권세는 갖지 못했지만, 하나님의 세우심으로 걸어간 길이다. 폭력앞에 노출되어 꼼짝없이 당하며 걸어가야 할 길, 힘과 권세와 부귀라고는 가질 수 없는 길이다. 그에게 있는 것은 오직 위로부터 내려오는 하나님의 말씀뿐이다. 감옥에 가둔 바스훌에게 임한 하나님의 음성은 한마디도 없었다. 하지만, 폭행당하고 갖힌 자리에서도 예레미야에게는 하늘이 열려있었다. 정리해보자. “가둘 수 있었지만 하늘이 닫힌 바스훌갖혀 있지만 하늘이 열려 있는 예레미야”, “세상의 권력은 가졌지만 하늘권세는 없는 바스훌세상 권력은 없지만 하늘권세를 누리는 예레미야의 두갈래길을 본다.

바스훌이 걸어간 길은 사람들에게 인기있는 길이었다. 평안의 메시지를 선포하고 백성들을 기쁘게 만들었다. 바스훌이라는 이름뜻부터 즐거워하다는 뜻을 갖고 있다. 그에게는 이런 거짓 예언을 하는 친구 거짓 선지자들도 많았고, 정황으로 보아 많은 식솔들을 거느리는 삶을 살고 있었다. 하지만, 예레미야의 길은 사람에게는 아무런 인기가 없는 길이었으며 그저 하나님 한분만 보고 걸어간 길이었다. 심판과 회개를 촉구하여 백성들에게 모든 조롱을 받는 길이었고 함께할 친구조차 없는 절대 고독과 외로움의 길이었다. 결혼도 하지말라는 그런 외로움의 길이었다. 사람의 인기는 넘쳤지만 하나님이 외면한 바스훌사람의 외면속에 살았지만 하나님이 주목한 예레미야”, “즐거움을 가득했지만 하나님을 슬프게한 바스훌고통과 번민으로 가득했지만 하나님의 위로였던 예레미야의 두갈래길을 본다.

이 두 갈래 길중에 당신의 선택은 무엇인가? 이렇게 나오면 할 말있겠냐고 불편한 반응도 있을 것 같다. “막다른 골목에 몰아놓고 어쩔래?”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불편하신분도 있겠다. 물론 가장 좋은 답은 감옥에 갖히지도 않고 하늘도 열린 삶, 세상권력도 갖고 하늘권세도 가진 삶, 사람의 인기도 넘치고 하나님도 주목하는 삶, 세상적으로도 마음껏 즐겁게 살면서 하나님도 좋아하는 삶이면 최고로 좋을 것이다. 말 그대로 바스훌과 예레미야를 합친 "바스미야"의 삶이 최고일 것이다. 하지만, 2가지를 모두 선택할 수 없을 때라면, 우리는 분명한 예레미야의 길을 선택해야 한다. 목회자로서 가장 힘든 유혹은 바로 바스훌의 삶이다. 얼마나 많은 목회자들이 바스훌의 길을 머리로는 거부하지만 삶으로 지향하는지 모른다.” 남 이야기 할 것이 없이 나 자신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이요 도전이다. 묵상하는 가운데 하나님 음성이 있었다. 너는 어떤 길에 있느냐? 송목사 대답하려 들지 마라. 이것은 네 머리에게 묻는 질문이 아니다. 네 마음 그리고 네 삶을 향한 질문이다. 입술로 대답하지 마라.”

 

두갈래길의 결국

바스훌은 이제 마골밋사빕 곧 사방의 두려움을 주는 자의 삶이 되고, 함께한 모든 친구들과 식솔들까지 죽음으로 몰아가는 자가 되었다. 난 이런거 어렵고 잘 모르니 착하게 열심히 살고 싶다는 말로 피해가려 하지 말라. 당신이 바스훌의 말을 듣고 그의 친구와 식솔이 되었다면, 그 피해와 결국은 여러분에게도 그대로 돌아간다. 이단에 빠진 사람들잘못된 길을 선택한 사람들이 착하게 순진하게 열심히 살아왔다는 것으로 변호해본들 그것은 정상 참작 그 이상은 없을 것이다. 거짓 선지자 때문이라고 말하지 마라. 거짓 선지자가 독버섯이었다면 당신도 그 독버섯이 잘 자라도록 도운 어둡고 습한 땅이었다. 이것을 결코 목회자들의 문제로 여기선 안된다. 그것은 당신의 운명을 결정하는 일이다. 깊이 기도하며 구별하며 고민해야 한다. 당신이 청종하고 있는 목회자가 바스훌에 길을 가는지 예레미야의 길을 가고 있는지그리고 목회자들을 위해 온 마음과 힘을 다해 기도해야 한다. 당신이 사랑하는 목회자에게 바스훌의 누룩이 스며들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