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설교

예레미야19장7-15절 / 오지병이 깨어질때...

양치는선비 2010. 5. 20. 16:08

생명의삶 QT노트

 

오지병 비유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것 (1)

 

오지병을 깨는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이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오지병이 깨어지듯 유대 역시 깨어질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예루살렘과 유대는 꺼지지 않는 등불이라고 생각하며 안심하고 있던 유대인들을 향해 너희는 더이상 꺼지지 않은 등불이 아니라 재생 불능의 깨어진 오지병이라는 것을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이 비유가 무서운 것은 꺼진 등불이면 다시 켜면 되지만, 깨어진 오지병은 회복 불능이라는 것이다. 다른 비유보다 오지병의 비유를 들은 것은 깨어지는 것을 넘어 절대 회복이란 없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내포하고 있기에 더 강하고 무서운 비유이다. 예레미야서의 심판이 남다른 것은 하나님의 분노속에 어떤 일말의 가능성도 용납하지 않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9절을 보면, 너무나 섬뜩하다. 포위당하여 굶게되면 아들과 딸 그리고 친구의 고기를 먹을 것이다는 도무지 성경에 있어야 할 표현인지 의심스러운 표현가지 나온다. 인육을 먹을 것이라는 것도 감당못할 표현인데,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끔찍할 정도이다. 이것을 이해하려면 어제 본문인 5절을 보면 된다. 이 표현은 당시 유대가 바알에게 제사하기 위해 자기 아들들을 인신제사로 바치는 짓을 하고 있었던 것을 빗대어 한 말이다. 하도 어이가 없고 기가막혀서 하시는 말이다. 자기 복받으려고 자기 아들들을 바치는 인신제사를 드리다니자식잡아 먹는 이놈들아 그래 자식의 고기를 먹게해주마하는 식의 하나님의 빗댄 표현이다. 이런 유대를 향해 하나님은 선포하신 것이다. 더이상 너희는 꺼지지 않을 등불이라고 착각하지 말라. 너희는 이제 꺼진 등불도 아니라 깨어진 오지병이다. 그러니 결코 회복될 수 없으리라.

 

오지병 비유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것 (2) 

 

오지병이 깨어질때깨어진 것은 과연 유대이기만 할까? 오지병이 깨어질때 산산조각 난 것은 바로 하나님의 마음이다. 깨어진 오지병을 통해 하나님은 당신의 깨어진 마음을 우리에게 나누고 싶어하신다. “언제까지 너희들이 내 마음을 이렇게 찢어놓을 것이냐?”는 절규와 피맺힌 눈물이 있다. 유대가 누구인가? 메시야의 가문을 맡긴 나라가 아닌가? 죄악으로 물든 인류의 희망으로 삼았던 족속이 아닌까? 그런 유대를 깨뜨릴때, 하나님은 과연 멀쩡하였을까? 화요일날 나눈 것처럼 우리는 여기서 문자언어가 아니라 가슴언어를 읽어야 한다. 오지병이 깨어질때 부서진 것은 유대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도 산산조각이 났다. 하나님의 일꾼, 하나님의 사람은 바로 이 깨어지는 하나님의 마음을 읽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이런 회복 불능의 깨어짐이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이런 최악의 절망과 분노속에서도 결국 하나님은 회복 불능의 것들에게 다시금 회복의 길을 주고 계신다는 것이다. 이 정도면 끝이다. 이 정도까지 왔으면 이제 절대절망이다. 하지만, 기억하자. 우리 하나님은 절대절망의 심판속에서도 절대회복의 은혜이다.” 무슨 말인가? 용서받지 못할 죄까지 용서하신다는 것이다. 결코 용서받지 못할 심판을 말하셨지만, 우리가 알고 있듯이 그 심판뒤에 결국 회복시키시는 분이라는 것이다. 눈을 감고 묵상하면 한 분이 보인다. 깨어진 산산조각난 질 그릇 조각을 모아 손 베어가며 피흘리며 다시 붙이고 계시는 분그분이 우리 하나님이시다

깨뜨림의 "문자언어"속에서도 조각맞춤의 "가슴언어"를 본다. 그래서 감사하고... 그래서 더욱 죄송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