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27

사랑의 반대

송병주 사랑의 반대는 무엇일까? 짧게 생각하면 "미움"이다. 조금 더 생각하면 "무관심"이다. 조금 더 깊게 생각하면 사랑의 반대는 "사랑"이다. 사랑을 잃은 사람은 없다. 단지 그 사랑의 대상이 바뀌었을 뿐... 그저 우리는 자신에게 솔직하지 않다. "사랑을 잃어버렸을 뿐"이라고 말하고 싶을 뿐... 자신에게 좀더 솔직해지면 사랑의 대상이 바뀐 것을 스스로 안다. 사랑의 상실과 무관심은 결국 "원인"이 아니라 다른 대상을 사랑함으로 발생한 "결과"임을 알게 된다.

칼럼 2009.11.11

멈추는 것이 동사가 되는 삶

송병주 산을 정복하는 것을 사랑하는 사람은 오직 정상만 보일뿐... 정상을 향해 가는 과정의 모든 것은 도구가 된다. 정상을 향한 발걸음에 유익한지, 걸림돌인지... 그 관점에서 이해한다. 하지만, 산을 사랑하는 사람은 깊은 계곡에 흐르는 물도 길가에 핀 이름없는 꽃한송이나 풀 한포기조차 목적이고 의미이며 정겹고 사랑스럽다. 정복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정상이 전부이지만 산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정상도 산의 일부분이기에 사랑한다. 정복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오른다"는 동사가 중요하다. 하지만 산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멈춘다"는 단어조차 동사가 된다. 산을 사랑하는 것처럼, 그렇게 교회를 섬기고 싶다.

칼럼 2009.10.29

무능한 전능자

송병주 "남용"은 능력이 아니다. 능력은 "무능"을 자처할 수 있을때,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힘을 절제할 수 있을때, 비로소 완성된다. 세상의 우상의 속성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힘의 남용이다. 그래서 그들은 전능해 보인다. 하지만, 하나님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신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얻어맞고, 채찍질 당하고, 십자가에 처형당한다. 사람들의 삿대질과 초롱과 침 뱉음에 그렇게 당하고만 있다. 자신이 지고 가는 십자가도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용서"밖에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나님은 무척 무능해 보인다. 무능해서 용서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칼럼 2009.10.20

성숙과 완벽

스스로 온전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 끊임없이 결단하고 결단하는 시간을 가졌다. 하지만, 늘 돌아오는 결과는 참담했다고 할까... 이 모든 것이 나의 결단과 의지의 부족이라 여기며 스스로 담김질을 하고 또 하고...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 온전함에 대한 추구는 내 의도와 달리 자신보다 타인을 향한 자신의 의로 바뀌는 것을 발견했다. 그래서... 온전함은 완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발견한다. 성숙은 성숙을 달성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미숙을 인정하며 그 여백을 성령님의 것으로 맡기는 믿음이리라. 성숙은 미숙의 부재가 아니라 미숙의 수용이며, 완벽하기에 자신만만한 자랑스러운 표정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발견하는 미숙함을 인해 자신의 가슴을 치는 회개와 눈물 속에 있음을 발견한다.

칼럼 2009.10.13

새벽... 갑자기 찾아온 위로의 말씀

차세대 담임목사로 부임하고 3일... 요즘 새벽기도회 시간, 아침 8시, 오전 10시... 3번에 걸쳐서 기도하는 시간을 갖고 있다. 족히 2시간 30분 이상은 기도하는 시간으로 하루 일과를 보낸다. 너무 바빠서 너무 할 일이 많아서 3시간이상 기도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루터의 영성까지는 아직 멀었나보다. 너무 바빠서 기도를 줄이고 싶은 욕심이 굴뚝 같은 나를 보면서... 아직... 많이 멀었다는 생각을 다시금 해본다. 그러던 새벽녁... 기도 가운데 갑자기 시편 48편을 찾아보고 싶었다. . . . 그리고... 감사해서 너무 감사해서 한참 울었다. 시 48:14 이 하나님은 영영히 우리 하나님이시니 우리를 죽을때까지 인도하시리로다. For this God is our God for ever and eve..

칼럼 2009.1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