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설교

히브리서 11장 1-7절 / 이상이 아닌 실상으로서 다르지만 한길로 가는 길, 믿음의 길

양치는선비 2010. 7. 23. 15:35

생명의삶 QT노트

송병주 목사 (선한청지기교회)

  

첫째. 믿음은 실상이요 증거이다.

믿음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은 매우 주관적이고 고백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오늘 읽은 히브리서의 본문은 믿음은 1절에서 실상이며 증거라고 말한다. 실상이라는 말은 객관적 사실이라는 헬라어이고, 증거는 법정 용어로서 판결을 결정짓는 객관성을 전제로 하는 말이다. 우리가 생각할때 믿음은 매우 종교적이고 내적인 자기 암시와 심적인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히브리서 기자는 정반대로 믿음이 얼마나 위대한 사실이며 법정 증거로 선택될 수 있는 것인지 계속해서 도전하고 있다. 믿음은 이상이 아니라 실상이며, 심증이 아니라 증거이다. 

미국의 한 불임시술 산부인과 병원에서 기도와 질병의 관계를 두고 실험을 했다. 똑같은 불임문제를 가진 사람들을 병원에 입원시키고 똑같은 방법으로 임신할 수 있는 조치를 동일하게 했다. 하지만, 한가지 환자들도 몰랐던 차이는 한쪽의 복도쪽에는 중보기도팀들이 기도를 하고, 반대편쪽에는 아무도 기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환자들은 누군가 자신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고 불임시술을 받았다. 결과는 놀랍게도 중보기도를 받은 쪽의 사람들이 거의 2배에 가까운 치료율을 보였다는 점이다. 물론 아무도 기도 테라피를 인정하지 않으려했다. 하지만, 믿음은 항상 형이상학적인 것만이 아니라 실상으로 다가오는 것도 사실인 것을 본다.

심방을 가서 성도님들을 만나면서 가장 크게 놀라는 것은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것을 온 몸이 떨릴 정도로 발견한다는 점이다. 심방을 통해 마지막 순간, 마지노선, 20분전에 하나님이 꿈도 꿀 수 없는 상황에서 채우시는 경험을 하는 아름다운 간증을 듣는 것은 목사의 큰 축복이요 특권이다. 이를 통해 필자가 발견한 것은 믿음은 주관적인 것만이 아니라 실체이며 법정 증거라는 점이다. 오늘 QT 노트를 적으며 결단하고 소망하는 것은 모든 성도들이 믿음을 정신세계와 심리세계속에 두지 말고 삶의 실체와 증거로 만드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도전이다. 지난 한주 계속 마음에 부담이 있었던 기도제목이 있었다. 오늘 QT가 응답이 되었다. 믿음의 실체가 실천될때가 되었다.


둘째. 생의 마지막은 달랐지만, 믿음의 길은 동일했다.

  특별히 오늘 3명의 믿음의 사람을 묵상하게 된다. 그런데 이들은 모두 믿음의 선진들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생의 마지막은 모두 달랐다. 아벨은 믿음의 사람이었지만, 형에게 비참하게 살해당했다. 반면 에녹은 죽음을 경험하지 않고 바로 하늘로 옮기웠다. 노아는 심판을 피하고 미래를 준비했지만, 모두가 심판받은 땅에서 외로운 마지막을 보내어야 했다.  비록 그들의 생애의 마지막은 완전히 달랐지만, 걸어간 믿음의 길은 동일했다.

이번에 7월 한달 많은 장례를 치르며 많은 묵상을 했다. 믿음 좋고 열심히 살았던 젊은이들의 안타까운 장례나,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살았던 한 가장의 슬픈 장례를 보면서 특별히 마음이 좋지 않았다. 혹자는 연수를 다하며 떠나기도 하고, 혹자는 연수를 다하지도 못한채 빨리 떠나기도 하며, 혹자는 죄악된 세상의 공격으로 죽음 당하는 현실을 어떻게 볼 것인가? 이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을 구하며 기도하는 중 오늘 말씀을 나에게 주셨다. 비록 그들의 생애의 마지막은 달랐지만, 동일하게 믿음의 조상이었다는 점이다.

먼저 마음에 주신 것이 아벨이었다. 비록 아벨은 믿음으로 온전한 예배를 드렸지만, 형에게 비참한 죽음을 당했다. 하지만, 4절은 아벨을 통해 우리에게 믿음이 무엇인지 보여주신다. By faith he still speaks, even though he is dead. 아벨이 비록 비참하게 죽음을 당했지만, 믿음으로 말미암이 그는 지금도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믿음은 죽음을 이기는 능력이다. 아무도 사망을 이기지 못한다고 하지만, 믿음은 사망을 이기는 것이라고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이 감동은 더욱 점층된다. 5절의 에녹은 어떠한가? 죽음을 이기는 믿음을 넘어, 사망을 넘어서 버린 믿음을 보여준다. 믿음의 능력은 죽어도 승리하지만, 죽음자체를 넘는 승리까지 감당한 것임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또한 믿음의 능력은 또한 7절에서 노아에서 본다. 그렇게 수고하였지만, 열매도 없고 조롱으로 가득한 일이었다. 산위에 배를 건조하는 그 일을 감당할 수 있었다. 그의 믿음의 길은 조롱과 황당한 일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자기만 살고 남들이 다 죽는 외로움의 길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 모든 길을 믿음으로 걸어갔던 것이다.  

믿음의 조상이 길이 결코 녹녹하고 쉬운 길이 아니었다. 모두가 에녹처럼 살게 되는 것이 아니다. 죽음당하며 조롱당하며 절대 외로움의 자리에 던져지는 것도 믿음의 길이다. 하지만, 그 모든 죽음과 조롱과 절대 외로움이 그들을 삼킬 수 없었다. 기억하자. 믿음의 길은 아무런 어려움이 없는 영광의 길이 아니라 치명적인 비참함으로 가는 여정과 함께갈 수 있다. 하지만, 에녹의 길을 가지 않았다고해서 믿음의 선진의 길이 아닌 저주의 길이라고 스스로 원망하지는 말자. 그래서 나에게 주어진 각자의 믿음의 길, 힘들고 어렵지만 꼭 아름답게 완주하게 되길 소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