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설교

예레미야 51장 33-40절 / 고통스럽지만 기도할 수 없을때

양치는선비 2010. 9. 8. 15:49

생명의 삶 /  QT나눔 / 송병주목사 (선한청지기교회)

 

 


고통스럽지만, 기도할 수 없을때

 우리가 살다보면,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말할 자격이 없을때가 있다. 너무 고통스럽고 힘든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미안하고 죄송스러워 아뢰지 못할때가 있다. “내가 한 짓이 있어서, 고통스럽지만 미안하고 죄송스러워서그래서 고통스럽지만 기도할 수 없을때, 그럴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Cool하게 괜찮은척 폼 잡고 당해도 싸다며 가만히 있는 것이 옳은 것일까? 아니면 아무리 잘못했어도 그렇지 어찌 이렇게 힘들게 하십니까?” 하며 목소리 높이고 더 세게 나가는 게 먹힐까? 아쉽게도 위의 두 방법은 스스로 무덤을 파는 행동이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일때 우리는 어떤 태도로 나아가야 할까?

오늘 본문에서 보게 되는 유대인들의 상황이 바로 이런 상황이다. 그런데 참 놀라운 것은 그들이 죄값을 치루며 고통을 겪으면서 많이 성숙해진 모습을 보게 된다. 그들은 아무일도 없는 것처럼 cool 하게 굴지도 않는다. 그들은 하나님을 원망하며 이럴 수 있느냐고 흥분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소리질러 주시옵소서하지도 않는다. 34절은 유대인들이 당한 고통이 나온 후, 35절은 그 고통중에 터뜨리는 탄원 내용이 나온다. 그래서 간절한 기원이 담겨 있지만, “주시옵소서보다는 “May…”하는 방식으로 탄원하고 있다. 하나님의 주권과 결정을 존중하며 그들의 탄원을 올리고 있다. 직접화법보다는 간접화법을 통해 그들은 죄송한 마음으로 자신들의 고통을 표현하는 어법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때로 우리의 기도 언어가 지나치게 단정적이다. 직접 화법이 강한 믿음을 보이는 것이라고만 생각하지 말라. 함부로 그렇게 기도하다가 오히려 하나님 속을 더 뒤집어 놓을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강한 표현을 한다면 그것은 큰 믿음이 아니라 더 크게 뻔뻔스러운 일이 될 수 있다. 내가 하나님 앞에 해법을 제시하며 내 요구를 무조건 실현시켜 달라는 우리의 단정적 기도 언어가 좀더 하나님의 주권과 판단을 신뢰하며 맡겨드리는 화법의 기도가 필요할때가 있다. 고통스럽지만 차마 죄송해서 기도할 수 없을때에도 우리는 이렇게 탄원기도를 드릴 수 있으며, 하나님은 그 기도를 원하신다.

 

부끄러운 탄원도 마음으로 받으시는 하나님

 이런 우리의 부끄러운 탄원에 대해 우리 하나님은 어떻게 반응하시는가? 36절은 보라 내가 네 송사를 듣고 너를 위하여 보수하여 그 바다를 말리며 그 샘을 말리리니 하면서 반드시 바벨론을 멸하시겠다고 약속하신다. 우리 하나님은 부끄러운 탄원도 마음으로 받으신다. “이런 죄인의 기도도 들으십니까? 이렇게 악한 저의 부끄러운 탄원의 소리도 들으십니까?” 그런 죄송한 마음을 가슴에 안고 입술로 고백하기 조차 부끄럽지만 우리가 진솔하게 나아간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 기도를 들으시는 줄 믿는다.

청년 부흥회를 준비하면서 대표기도를 맡은 적이 있다. “청년들 안에 부흥을 주시옵소서. 한국 교회를 다시한번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이 땅에 하나님의 교회들이 힘을 얻게 하옵소서.”하며 목청 껏 기도하고 싶었는데, 성령께서 그렇게 기도하는 것을 막으시는 것을 느꼈다. 그때 너무나 나약해 보이는 모습으로 주님 부끄럽고 죄송스러워 주님 앞에 우리는 멀쩡한 듯 폼잡고 기도할 수 가 없습니다. 분열과 거짓과 속임수와 위선으로 가득한 이 시대의 교회지만, 한번 만 더 부흥의 역사를 허락해주시면 안되겠습니까? 한번 만 더 우리를 사용해 주신다면 참 좋겠습니다. 한번 만 더 이 땅의 교회가 이 땅의 희망이 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시면 참 좋겠습니다.” 그렇게 기도하는데 참 눈물이 많이 났다. 그리고 성령께서 그 기도를 참으로 기뻐하신다는 마음이 들었고, 오늘 그들의 탄원을 들으신 것처럼 응답하실 것이라는 소망을 갖게 되었다.


맺으며 

오늘 이 아침 묵상을 하면서 참 감사한 것은 부끄러운 우리들이 그 부끄러움을 알고 탄원할때, 그 탄원을 우리 주님 기뻐하시면 들으신다는 점이다. “입 다물어! 자업자득이야!” 하시기 보다는 그 탄원에 마음을 같이 담아주신다는 것이다. 오늘 이 아침하나님앞에 어떻게 탄원을 드려야 할까 묵상하는 시간이 되어야 겠다. 고통스럽지만 기도할 수 없을때, 그 때도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탄원기도가 드려질 수 있다는 것이 은혜다. 기억하자. 우리 주님은 탄원할 자격조차 없는 사람들의 울부짖음도 마음으로 들으신다.” 오늘 그것이 절망적인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의 영원한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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