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설교

예레미야 51장 41-53절 / 세상의 신은 가까이 있고 하나님은 멀리 보일때에도...

양치는선비 2010. 9. 9. 16:17

생명의 삶 / QT나눔 / 송병주목사 (선한청지기교회)

 


사노라면


살다보면, 세상의 신은 내 눈앞에 보이고 하나님은 멀리 보인다. 세상의 왕국은 현실로 다가오고, 예루살렘은 신기루처럼 보일때가 있다.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기에, 하나님이 더이상 주인처럼 보이지 않을때가 있다. 바벨론의 신화가 믿음의 역사보다 위대해 보일때가 있다. 솔직히 나의 생활속에서 하나님은 아득한데 바벨론은 선명하다. 그래서 저 멀리뵈는 시온성을 보며 살아가는 것보다 여기 가까이 뵈는 바벨론을 의지하며 사는 것이 더 현실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오늘 말씀을 보면서 이렇게 도전하고 싶다.  눈앞에 보이는 바벨론이 아니라 저 멀리 뵈는 예루살렘을 바라보라.”

하나님의 사람들은 세상 신의 위대한 신화보다 크신 하나님의 구속사를 보아야 한다. 사노라면 세상의 신은 가까이 있고 하나님은 멀리보인다. 하지만, 눈 앞에 더 가까이 보인다고 해서 강하고, 멀리 보인다고 해서 약한 것이 결코 아니다. 우리는 Not by sight But by faith로 사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근시가 아니라 원시가 되어야 한다. 진정한 영성은 눈앞에 보이는 현실이 아니라, 현실을 넘어 멀리 바라보는 믿음에 있다. 세상의 신은 가까이 있고 하나님은 멀리 보일때에도 멀리 보이는 것을 의지하며 사는 인생이 되길 기대한다.

 

너무나 현실적인 눈앞의 신, 벨을 보는 서로 다른 2가지 관점

 

벨은 너무나 현실적인 눈앞의 신, 바벨론의 수호자이다. 벨의 이름뜻은 신들의 주라는 뜻으로 말 그대로 Lord of gods라는 말이다. 혼돈의 바다를 상징하는 가장 강력한 신인 티아마트가 내세운 11개의 괴물과 싸워 이겨 가장 강력한 신으로 설명되는 존재였다. 강력한 바벨론 제국을 만들고 티그리스와 유프라데스 강이라는 최고의 배경을 근거로 최고의 곡창지대의 경제적 부요를 제공하는 신이다. 감히 대적할 수 없는 제국의 신, 정치와 경제 그리고 문화와 종교의 상징으로 존재하는 신이었다.

하지만, 이런 벨을 보는 하나님의 시선은 좀 다르다. 그저 벌받을 존재에 불과하다. 44절에서 내가 벨을 벌하고이 말자체가 조크처럼 들린다. “I will punish the Lord of gods.”라는 말이 참 재미있다. 52절에서는  결국 벨이라고 하지 않고, “우상이라고 하며 개역한글은 그 조각한 신상을 벌할 것이라고 한다. 신들중의 주라는 존재를 하나님은 그저 나무 조각에 불과하다고 선언해 버린 것이다. 한 마디로 까불고 있어~”이다. 인간의 눈에 절대 강자이며 신중의 신이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조각 나무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런 큰 시각의 차이에서 우리는 하나님과 인간의 시각사이에 큰 온도차이가 있음을 발견한다. 11개의 괴물과 싸워 혼돈의 바다를 바꾼 위대한 신을 그 조각한 신상으로 보신다. 우리에게 이러한 시각이 필요하다. 위대한 대 제국의 수호신으로 보고 있지만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 앞에선 먼지같은 존재이다. 사람들은 신화에 열광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믿음으로 나아가기를 원하신다. 누가 뭐라고 해도 세상이 강해보인다. 하지만, 거대한 세상을 하나님의 눈으로 보는 법을 우리는 배워야 한다. 신화를 넘어 믿음으로 보기 시작할때 우리는 세상 앞에 결코 작아지지 않는다.

 

먼 곳에서 여호와를 생각하며 예루살렘을 너희 마음에 두라.


그러므로 50절은 매우 중요한 구절이다. 세상의 신은 눈앞에 보이고 하나님은 멀리 보일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확한 방향을 제시해주고 있다. 먼저 우리는 바벨론에 미련두지 말고 즉각 그 땅을 떠나야 한다.” 오늘 본문의 앞절인 서지말라 행하라는 말이 미련을 두지 말고 떠나라는 말이다. 아무리 눈앞에 강하게 보인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징벌이 임하면 미련두지 말고 떠나야 한다는 도전이 있다.

그리고 둘째로 먼곳에서 여호와를 생각하며 예루살렘을 너희 마음에 두라.” 고 함으로 여전히 순례의 길속에서 소망의 사람들이 되어라고 도전하고 있다. “아무리 멀리 있어도 여호와를 생각하라. 아무리 멀리 있어도 예루살렘을 너희 마음에 두라.” 말 그대로 다니엘의 기도의 모습이다. 필자는 이것을 어떤 절망과 황망함 속에서도 기도의 소망을 놓지말라는 성령님의 도전이라 고백하고 싶다. 사노라면, 하나님이 멀게 느껴질때가 많다. 참 아득하고 더디고 신기루처럼 여겨질때가 있다. 하지만, 그런 상황속에서도 저 멀리 뵈는 시온성을 향한 기도의 마음이 현실을 이기는 힘과 능력이 됨을 꼭 기억하길 소망해본다.

 

맺으며


강한 세상앞에 하나님은 정말 멀어보인다. 그래서 50절말씀이 내 마음을 결단하게 하신다. “먼 곳에서 여호와를 생각하며, 예루살렘을 마음에 두라.” 그래서 오늘 이 아침의 기도는 소망의 기도이다. 자녀를 보며, 배우자를 보며, 우리의 가정과 현실을 보며, 이 시대의 현실과 교회를 보며, 아무리 아득해 보여도 소망의 기도를 심어야겠다. 예레미야의 이 예언이 이루어진 것처럼, 그 소망의 기도는 반드시 이룰 줄 믿는다. 그 기도가 이루어질때 우리의 기다림이 면류관이 되며 감사의 증거가 될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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