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설교

디도서 강해2 / 늙은 남자와 젊은 남자를 향한 권면

양치는선비 2010. 10. 1. 03:26

2:1-18

송병주 (선한청지기교회) 

 

첫째. 직분자들은 항상 배워야 한다. / 1-2


일반적으로 어른들은 가르침의 대상에서 제외된다고 생각한다. 특히 그 시대의 노인들은 지혜자로서 배우는 자가 아니라 가르치는 자라는 인식이 팽배하던 시대였다. 하지만, 바울은 디도에게 가르치라고 도전하고 있다. 한글 성경으로는 직접적으로 가르치라는 표현이 보이지 않지만, 1-2절은 강력한 가르침을 촉구하고 있다. 1절은 you must teach로 시작하고, 2절은 Teach the older men to temperate 라고 하며 가르치는 사역을 강세형으로 절대 명령법으로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지혜자로 여겨지던 어르신도 배워야 한다는 절대명령법을 보면서 우리는 성숙한 직분자라 할지라도 배워야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한국에 있을때 80순이 넘으신 권사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귀한 유산을 남기고 가셨다. 옷장안에 성인 키 높이 만한 설교노트와 묵상노트가 가득 들어있었던 것이다. 평생을 기도와 말씀으로 자녀들을 키우면서, 남편이 떠나고 홀로 되셔서, 아이들 키우다 힘들고 어려울때 묵상한 설교와 말씀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돌아가시기 전에는 더이상 눈이 침침하고 보이지 않아 성경을 이제 읽을 수 가 없다. 참으로 안타깝다. 그래서 더이상 볼 수 없는 날이 오기 전에, 귀가 온전하니 성경을 듣고 외우야 겠다.”는 결심이 적혀 있었고, 로마서를 다 외웠다고 하신다. 돌아가시는 날까지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묵상한 그 모습자녀들은 그 마지막 유산을 서로 갖고 싶어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유산이었고, 유산놓고 싸우는데(?)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었다.

직분자로 세워지는 사람들일수록 다 이루었다. 혹은 배울 만큼 배웠다는 생각보다 더욱 배우기에 힘쓰는 겸손의 사람이 되어야 할줄 믿는다. 말씀을 온전히 가르치는 일에 교회의 교사인 목사도 생명을 걸고, 그 말씀을 송이꿀보다 달게 여겨 알고자 하는 열망이 넘치는 평신도 지도자들이 가득한 교회야말로 말씀이 생명으로 있는 교회일 것이다.

 

둘째. 지식이 아니라 성숙을 배워야 한다. / 2


이렇게 배워야 한다면, 우리는 보다 더 말씀에 대한 지식과 왜 이단이 잘못되었는지를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바울은 디도에게 그들을 가르쳐 배우게 하되 그것이 지식전달로서 학습이 아니라 삶과 인격의 깊이가 성숙으로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기억할 것은 하나님의 세움받은 사람들은 입술의 변증이 아니라 생활 변증으로 승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기서 우리의 관심을 끄는 단어는 경건과 근신이다. 경건의 원어적 의미는 존경할 만한 가치가 있음이란 의미이다. 그리고 근신해야 한다는 말은 “Self Control”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무슨 말인가? “과다와 남용으로 무분별한 말잔치가 가득한 거짓된 교훈을 이기는 참된 힘은 바로 절제와 근신을 통해 경건을 이루는 일이다. 기억하자. “거짓된 교훈을 이기는 힘은 화려한 언설과 입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성숙과 절제속에 있다.”

 

셋째. 그 성숙으로 바른말을 하게 하라”(바른 말이 되게하라) / 7-8


바른 말을 하게 하라는 것은 우선 올바르고 정확한 교리와 사상을 알고 말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오늘 본문의 앞뒤 정황은 얼마나 온전한 신학교를 나와 건전한 말씀에 대한 교훈과 신학적 지식을 가졌는지를 논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말은 입술과 언어로 바른말을 하게 하라는 것이 아니라 행동과 삶으로 바른말을 하게하라는 도전이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을 통해 바른 말을 하라는 의미는 바른 말이 되게하라는 의미를 동시에 갖고 있는 것이다. 말은 바른 말인데,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바른 말들이 많다. 바른 말이 바른 말 되게 하기위해 온전한 삶을 살라는 도전이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있는 것이다. 말씀구라가 되지 않게하려면 얼마나 정확한 것을 가르쳤냐기 보다 어떻게 살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잊어선 안될 것은 모범이 바른 말의 출발이다.

 

맺으며


믿음의 백성은 끝까지 배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유교에서 장례를 치룰때 학생…”이란 말로 위패를 시작한다. 평생을 배우며 살아온 인생으로 여기는 그 위패가 참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평생을 제자란 말로 살고 싶고, 누군가 내 삶을 제자 아무개로 불러준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므로 예수를 따르고 배우는 그 제자들은 말과 지식을 배웠다기 보다 바로 예수의 삶을 배웠고, 그 삶으로 복음의 변증을 이루어 온 것을 불 수 있다. 그렇다면, 바른 교훈과 진리는 입술을 통해 능력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흘리는 땀방울과 눈물속에 있는 것이리라. 오늘 이 시대의 기독교의 리더십에 위기가 온 것은 박사가 모자라서가 아니라 바른 말이 바른 말 되게 만드는 성숙과 절제의 부재라고 생각해본다. 바른 교훈! 입술에 있지 아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