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설교

디도서 강해 4 / 올챙이에서 상속자로...

양치는선비 2010. 10. 3. 12:56

본문 / 딛 3:1-7

송병주 (선한청지기교회)

 


교회를 섬기는 직분자로 세워질때 우리가 절대 잊어선 안될 것이 있다. 그것은 내가 죄인이었다는 사실이고, 하나님의 은혜로 부르심을 얻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자기 속에 어떤 선한 것이 있어서 세움을 얻었다고 생각하지만, 기억할 것은 우리는 싹수부터 노란 인생이었다는 것이다. 올챙이적 시절을 잊지 않는 것그것이 참된 하나님의 부름받은 사람의 올바른 첫 단추일 것이다. 그것을 잊지않고 설때, 참된 하나님의 상속자로 특권을 누리게 될 줄 믿는다.


 

첫째. 올챙이 시절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 3

 

하나님이 세우신 사람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아무런 소망이 없었다는 사실을 종종 잊어버린다. 군대에서 제일 군기 잡는 사람들이 후임병 시절 고문관들이었다. 가장 군대생활 으로 한 사람들이 가장 FM 으로 군대생활한 것처럼 거들먹 거린다. 직분을 받고 지도력의 자리에 설때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이제 인정받을 위치에 올랐다는 생각보다 죄인에게 주신 은혜를 생각해야 한다. 정말 왠 은혜인가?”라는 질문앞에 눈물 쏟는 준비가 되어 있을때 우리는 참되게 하나님의 세우신 사람이 되는 것이다.


바울은 평생을 가슴속에 죄인중의 괴수였음을 잊지 않고 살았다. 오늘 본문 3절도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람들은 우리가 죄인이었음을 잊지 말라고 도전한다. 이스라엘이 선민이기 이전에 노예였음을 잊지 말라는 것과 동일하다. “너희가 애굽에서 종 되었을때…” 선민이라는 은혜가 교만의 도구가 되지 않기 위해 하나님은 끊임없이 너희가 소망없는 죄인이었음을 도전한 것이다. 그래서 구약은 아주 의도적으로 보일만큰 선택받은이란 수동태로 이스라엘을 주어로 세우지 않는다. 철저하게 하나님이 선택하셨다는 능동태로서 선택의 주권이 하나님에게 있음을 의도적으로 드러낸다.


작년 장로 은퇴식때 김재식 장로님의 고백은 참으로 깊은 은헤였다.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데 없는자 찬송을 부를때마다 마음에 반감이 있었습니다. 나도 나름대로 쓸만한데그러나 장로로 시무를 마치고 은퇴하는 지금, 이제야 이 말의 의미를 제대로 알겠습니다. 그걸 깨달아 아는데 20년이 걸린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이런 마음이다. “왠 은혜입니까…” 라고 눈물로 고백할 수 있을때, 참된 직분자로 서는 것을 잊지 말자. 자부심과 비전에 불타기 전에 죄인에게 주신 은혜앞에 설때 부름받은 자의 진정한 모습이 있다.


 

둘째.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회복시키셨습니다. / 5-6

 

올챙이적 시절을 잊어서는 안되지만, 여전히 올챙이로 남아있어서는 곤란하다. 죄인중의 괴수였음을 기억하는 것과 여전히 죄인중의 괴수로 사는 것은 다른 것이다. 중생의 씻음은 과거의 더러운 것을 먼저 깨끗게 하는 것으로 삶의 혁명적인 전환점을 일으킨 모습을 말한다. 여기서 중생의라는 말은 우주적 차원의 변화란 뜻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근본적인 토대부터 완전히 씻어 버린다는 의미를 갖는다. 그러므로 중생의 씻음은 죄악된 과거의 삶의 단회적 혁명적 회복을 의미한다. 동시에 성령의 새롭게하심은 점진적 지속적 변화를 의미한다. “새롭게 한다는 말은 영어로는 Renewal인데 그냥 새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반복적으로 다시라는 Re- 접두어를 붙여서 새롭게하는 것이 반복적 지속적으로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이 두가지는 부름받은 자의 필수다. 중생의 씻음없이 직분자로 교회를 섬기는 것은 비극이다. 목회자 중에도 천국이 정말 있다고 믿으십니까?”라는 질문을 던질때 참 마음이 아프다. 어떤 장로님은 돌아가시기 전에 너무 힘들어 했다. 개인적인 시간에 그렇게 말씀하셨다. “저는 천국에 대한 소망이 없습니다. 그저 교회 열심히 다녔고 잘 지냈더니 어느날 안수집사되고 장로가 되었습니다. 열심히 일하기는 했지만, 아무도 나의 영혼의 문제에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습니다.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습니다.” 중생의 씻음이 없다면,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위선이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들은 그 은혜의 회복앞에 먼저 서야 한다.


반면에 중생의 씻음은 있는데, “성령의 새롭게하심을 지속적으로 경험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중생의 감격과 경험이 지난날 아련한 추억처럼 남아있고, 성령의 날마다 새롭게 하시는 은혜속에 전혀 있지 못하는 모습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부인할 수 는 없지만, 하나님과 아무런 상관없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고등부 수련회에서 받은 구원의 감격만으로 고등부 자녀를 둔 지금까지 버틸 수 는 없는 일이다. 성령의 새롭게하심이 없는 믿음생활은 결국 위선의 껍질을 만들 뿐이다. 위선의 껍질로 위장된 믿음이 아니라 날마다 새롭게하시는 은혜앞에 우리가 설때 참된 하나님의 은혜의 사람으로 설 수 있는 것이다.


 

셋째. 그 회복으로 그리스도의 후사가 되게 하셨다. / 7


우리가 죄인이었음을 알고, 하나님의 은혜로 부르심 받았음을 인정할때, “하나님의 후사곧 상속자로서 특권을 누릴 수 있다. 올챙이같은 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보다 더 큰 은혜의 자리로 우리를 인도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는 길은 우리의 의로운 행위의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는 것이다. 얼마나 하나님 나라에 기여도가 높았는지 그 결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얼마나 훌륭한 의인이었는가로 인해 결정되는 것도 아니다. 오직, 은혜로 말마암아 그의 상속자가 되는 것이다.


바라는 것은 모든 직분자들이 이 상속자의 특권을 누리는 일이다. 우리에게는 종의 정체성도 있지만, 또한 상속자의 정체성이 있다는 것을 결코 잊지 말기를 기대해본다. 코 꿰어 도살장에 질질 끌려가는 소의 모습이 아니라, 거지 왕자의 영광을 누리는 삶을 기대해본다. 교회 직분을 지나치게(?) 사모하는 모습도 참 부담스럽다. 하지만, 교회 직분을 너무 귀찮게 여기는 모습은 더욱 안타깝다. 욕망으로 함도 아니고, 억지로 함도 아니고, 나의 의와 업적으로 함도 아니라, 오직 은혜로 말미암아 나아갈때 참된 상속자의 특권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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