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설교

계 5:1-14 / 봉인된 책 앞에서

양치는선비 2010. 11. 26. 16:13

요한계시록 5장 강해 / 생명의삶 / QT노트 / 송병주 목사 (선한청지기교회)

 


봉인된 책이 무엇인가?


봉인된 책이 무엇인지 정리하는 것이 우선 중요하다. 이 봉인된 책의 의미를 이해하려면 이사야29:9-14절을 꼭 정독할 필요가 있다. 29:11은 봉인된 책의 의미를 우리에게 잘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 봉인된 책이라면 좁게는 유다를 향한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를 말한다. 그리고 넓게는 앗수르와 애굽을 포함한 하나님의 포괄적 종말의 메시지까지포함한다. 이사야서는 당장의 심판의 메시지를 항상 예수의 재림으로 더불어 회복될 총체적 구속사적 확정으로연결시키는 특징을 갖고 있다. 당대의 심판과 회복도 이해하지 못하는 이스라엘이 재림으로 도래될 종말과 회복을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므로 오늘 계 5:1에서 봉인된 책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인해 마지막에 완성될 심판과 구원에 대한 모든 내용을 말한다. 그러므로 이것은 2가지를 다 포함한다. 첫째는 예수 그리스도의재림이란 구속사적 관점에서 보지 않으면 도무지 이해할 수 없을 종말론을 다룬 구약의 묵시전체를 말한다. 둘째는계시록 6장부터 나오게 될 내용이나 계시록 전체로 볼 수 있다. 2가지를다 아우른다 말은 계시록 6장부터 내용들이 구약의 묵시를 관주로 삼아 이해해야 한다는 말이며,동시에 구약의 묵시들이 당대의 사건만이 아니라 재림의 관점에서 구속사적으로 재해석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그러므로 봉인된 책을 이해하려면 무엇이 전제가 되어야할까? 바로 다시 오셔서 회복하실 예수님의 관점에서 해석되어야 한다.

 

왜 봉인되었는가?

 

봉인되었다고 하는 말때문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종말은 두려운 것으로 생각한다. 아무나 풀 수 없고, 영해를하며 계시를 받은 특별한 일곱 선지자들만이 할 수 있는 일처럼 생각한다. 일곱 봉인이 되었다고 하니까 도무지풀지 못한 두려운 것으로 여긴다. 하지만, 오늘 본문 배경을 좀더 알고나면 생각이 바뀌게 될 것이다.

오늘 이 봉인의 원인은 하나님의 신비주의와 보안철저 정신 그리고 묵시를 은폐라려는 하나님의 심술의결과로 일어난 일이 아니다. 이사야 29:9-14을 잘 읽어봐야 한다는 것이 바로 이것때문이다. 그 본문을 읽어보면, 하나님이 봉인하신 것이 숨기기 위한 것이 목적이 아니라,이스라엘의 패역과 종교적 외식과 형식주의에 하나님이 질리신 결과였다. 봉인이 된것은 아무리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겠다고 해도 그 말씀을 믿고 회개하지 않는 유다를 보시면서, 말해봐야 소용없는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해 하나님이 닫아 버리셨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 봉인의 원인은 군사기밀 유지하듯이 철저한 하나님의 보안의 결과가 아니라, 말해도 듣지않고 회개하지 않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해 닫아 버린 결과라는것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봉인된 책을열려면 무엇이 전제가 되어야 할까? 바로 하나님의 백성들의 회개와 갈망이 있으면 된다.

 

봉인은 어떻게 풀리는가?

 

먼저 회개와 뜻을 알고자 하는 갈망의 눈물이 봉인을 열개하는 계기가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4절을 보면, “요한이 크게울었더니미완료 능동태 시제로 사용된 그의 멈추지 않는 갈망과 울음이 봉인을 푸는 계기가 되었다.기억할 것은 성도의 회개와 갈망이 담긴 멈추지 않는 탄원과 눈물이 마지막때를 여는 첫 단추가 된다는 것이다.두려워하지 말라. 누군가 알려주어서가 아니라, 용한 사역자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알고자 갈망하며 회개의 심정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비밀은 은폐되지 않고 계시된다. 그의 미완료 능동태의 눈물은 봉인을 푸는 즉각적인 행동을 초래했다.

둘째 그 눈물로 인해 5절은 누가 봉인을 떼어줄지 보여준다. 누구이겠는가? 5절을 보자. “울지말라. 유다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이기었으니 이 책과 그 일곱인을 떼시리라 하더라이 말씀은 역시 구약을 배경으로 한다. 창세기 49:9유다는 사자새끼로다 예언과 이사야 11:1이새의 뿌리에서 가지가 것이라 예언에 근거한다. 그러므로 이분은 바로 예수님이시다. 6-7절은 이점을 더욱 분명히 한다. “일찍 죽임당한 어린양을 통해 그 책은 펼쳐질 것을 보여주고 있다. 예언은 바로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서는 완성되지 않고 완전한 이해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 모든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속사적으로 이해되고 해석될때 진정한 의미를 알 수있다는 것이다.

종말은 두려운 것이 아니다. 우리의 무지함과 거짓을 알고 참된 회개의 자리에 설때, 예수 그리스도를정점으로 우리는 모든 마지막때의 비밀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봉인된 것이라 두려워 말라. 회개의 눈물로 주님을 붙들때, 그 봉인된 책은 열린 책이 된다. 철학과 과학과 그 어떤 것으로 나아가도 그 봉인은 풀수 없다. 오직 회개하는 심령, 예수님을 중심에 둘때에 종말은 닫힌책이 아니라 열린 책이다.

 

봉인이 풀릴때 어떤일이 기다리고 있는가?

 

이 신비한 봉인이 풀리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심판과 환난으로 공포와 두려움이 밀려오게 될까? 봉인이 풀리면 귀신이 달려들고 온갖 일들이 다 터져버릴 것 같다. 하지만, 오늘 본문은 그 봉인이 풀리는 결과가 우리에게 큰 축복임을 다시금 보여준다.

8절부터 14절까지 어린 양을 향한 찬양과 영광이 울려 퍼진다.그리고 그 어린양이 하나님으로서 경배 받으시는 것을 보여준다. 마지막때의 숨겨진비밀이 드러날때, 그것은 결코 두려움과 공포가 아니라 찬양과 경배를 동반하는 것을 보여준다.결코 두려워 할 수 없는 영광과 찬송이 마르지 않는 노래로 터져 나오는 것이 바로 봉인을 풀때 일어나는 일이다.하늘의 비밀이 터져 나올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찬양과 경배이다. 봉인이 풀리는 것은 두려움이 아니라 탄성을 초래하며,의문이 아니라 느낌표를 주고, 탄식이 아닌 감탄사를 터트리게 한다.

그리고 온 열방을 다스리시고 회복하실 왕의 등극 자리에 일어나는 두번째의 놀라운 일은 어린양의 영광만이 아니라 우리라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영광이 그 영광에 동반된다는것이다. 10절을 보라. “저희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셨으니 저희가 땅에서 왕 노릇하리로다 하더라.” 봉인이 풀릴때, 그 놀라운 영광은 어린 양의 것으로국한되지 않고 그 영광에 우리까지 왕으로 세우는 시는 은혜가 임한다는 것이다. 어린 양이 영광받으시는 자리에서우리까지 그 영광을 받게 하시는 것이다. 이것이 은혜이다. 잊지 말라.  “종말은 결코 우리를 두려움으로 믿음을 강요하는 도구가 아니라, 감탄과 탄성으로 누릴 영광을우리에게 주는 은혜의 통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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