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병주 39

(삶과 신앙의 의문을 찾아서) 4편: 삼위일체는 그냥 믿어야 합니까?

요 14:14 송병주 목사 (선한청지기교회) 들어가는 말 삼위일체 신앙은 항상 공격의 대상이었다. “성경에 나오지 않는다. 하나님을 머리 셋 달린 괴물로 만들었다. 로마적 이교주의의 영향을 받은 사악한 교리다.” 그래서 폐기되어야 한다는 공격이 많았다. 실제로 여호와증인을 2대째 50년간 믿어온 분과 심각한 대화를 나눈적이 있다. 그때 나보고 그런 말을 했다. “예수는 하나님이 아닌데, 로마의 우상숭배에 빠진 기독교가 하나님이 아닌 겸손한 분 예수를 하나님으로 만드는 거짓교리를 만들어 겸손한 예수를 더러운 우상으로 변질시켰다. 하나님이 아닌 분을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은 사단이 하는 짓이다.” 그래서 나는 다시 대답했다. “예수는 하나님이신데, 근대의 이성주의에 빠진 사람들이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수님을 인..

묵상&설교 2010.07.13

히브리서 5장1-10절 / "아론"같은 그러나 "멜기세덱"같은 대제사장

송병주 (선한청지기교회) 아론과 같이 예수님의 모습에 대해 첫번째로 소개하는 것은 아론과 같은 대제사장이라는 점이다. 4절에 대제사장으로서 예수님의 모습은 “아론과 같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자라야 할지니라.” 고 제시되고 있다. 이것은 예수님이 “사람의 연약함을 공감할 수 있는 존재”라는 의미에서 설명되고 있다. 2절말씀은 매우 강렬하다. “그가 무식하고 미혹된자를 능히 용납할 수 있는 것은 자기도 연약에 휩싸여 있음이라.” 너무나 가슴에 와 닿는 표현은 “연약에 휩싸여 있다”는 표현이다. 우리의 대제사장인 예수 역시 “연약함에 휩싸여 있는 존재”라는 것은 우리에게 큰 위로와 힘이 된다. 주의할 것은 이것이 열등하고 저급하다는 말이 아니라 인간의 연약함을 이해하고 공감하기 위해 철저히 비천과 무능의 자..

묵상&설교 2010.07.10

예레미야 28장12-17절 / 하나냐의 길 vs. 예레미야의 길

생명의삶 QT노트 / 송병주 하나냐: 하나님 없이 하나님의 일을 한 사람 하나냐는 어떤 사람인가? 이샤야의 제자로 많이 배우 사람이었고, 선지였으며, 애국주의자였다. 그는 탁월한 웅변과 Performance로 백성들의 환호와 갈채를 받았고, 이스라엘에게 희망을 준 사람이었다. 그는 어제 말씀처럼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처럼 보였고,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메신저였다. 모든 점에 있어서 그에게 부족함은 없다. 세계 최강대국 바벨론과도 싸울 수 있는 배포와 백성들에게 희망을 주는 사람이었다. 이처럼 모든 장점을 다가진 사람이었지만, 하지만, 그에게 딱 한가지가 없었다. 그것은 15절, “여호와께서 너를 보내지 않으셨다.”는 것이었다. 백성들에게 회복에 대한 믿음을 주었고, 그 믿음으로 최악의 상황의 ..

묵상&설교 2010.06.11

예레미야 24장1-10절 / 최악의 상황이 은혜의 통로가 됩니다

선한청지기교회 송병주 목사 생명의삶 QT노트 하나님의 관점과 우리 관점의 차이 유대 멸망기에 유대인들은 3가지 집단으로 분류되었다. 첫째는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이다. 너무나 머나먼 길로 포로로 잡혀가는 길에 죽을 가능성이 높으며 끌려가서 대부분 노예생활을 하게 될 사람들이다. 말 그대로 고향과 가족들과 떨어져 전쟁포로로 잡혀가는 비참한 인생들로 누가봐도 희망과 내일을 기약할 수 없다. 둘째는 첫째와 반대로 애굽으로 도피한 사람들이다. 당시 유대의 우방인던 애굽행이 가능했던 것을 볼때 아무래도 사회적인 지도자 급으로서 친 애굽파들이다. 애굽에 인맥이 형성되어 있고, 나름대로 멸망기에 집과 땅과 권력은 잃어버렸지만, 목숨을 보존했고 우방인 애굽으로 피신했으니 최고로 잘 풀린 사람들이다. 마지막으로..

묵상&설교 2010.06.01

예레미야20장1-6절 / 두 갈래길에서 "예레미야의 길 vs. 바스훌의 길"

생명의삶 QT노트 두갈래 길 앞에서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2명의 예언자가 걸어가는 유사하지만 전혀다른 2갈래 길을 볼 수 있다. 성전의 감독관이었던 바스훌과 열방의 감시자였던(렘1:10)였던 예레미야, 평강의 예언자였던 바스훌과 심판의 예언자였던 예레미야의 2갈래 길을 보게 된다. 우리 인생 앞에도 항상 두갈래 길이 있다. 예레미야의 길과 바스훌의 길… 그 두갈래 앞에서 우리의 신앙은 결정된다. 주의할 것은 이것은 불신의 길이냐 신앙의 길이냐가 아니다. 신앙의 길을 걷고 있는데, 선지자의 길, 제사장의 길을 걷고 있다면 당연히 예레미야의 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해다. 이 두 갈래길은 신앙인과 불신앙인의 두 갈래길이 아니다. 신앙인으로서 선지자로서 신앙의 지도자로서 어떤 두 갈래의 길을 선택할 것인..

묵상&설교 2010.05.21

예레미야19장7-15절 / 오지병이 깨어질때...

생명의삶 QT노트 오지병 비유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것 (1) 오지병을 깨는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이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오지병이 깨어지듯 유대 역시 깨어질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예루살렘과 유대는 “꺼지지 않는 등불”이라고 생각하며 안심하고 있던 유대인들을 향해 너희는 더이상 “꺼지지 않은 등불”이 아니라 재생 불능의 “깨어진 오지병”이라는 것을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이 비유가 무서운 것은 “꺼진 등불”이면 다시 켜면 되지만, 깨어진 오지병은 회복 불능이라는 것이다. 다른 비유보다 오지병의 비유를 들은 것은 깨어지는 것을 넘어 절대 회복이란 없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내포하고 있기에 더 강하고 무서운 비유이다. 예레미야서의 심판이 남다른 것은 하나님의 분노속에 어떤 일말의 가..

묵상&설교 2010.05.20

예레미야 18장 13-23절 / 문자언어가 아닌 가슴언어 읽기

생명의삶 QT노트 선지자의 아픔 예레미야를 눈물의 선지자라고 한다. 왜 눈물의 선지자일까? 사랑하는 백성들을 향해 멸망을 선언해야 할 선지자로서 그들이 당하게 될 고통과 심판이 안타까워서 흘리는 깊은 고뇌의 눈물이 주된 이유였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선지자로서 이런 거룩한 눈물만 있었을까? 그런 거룩한 눈물도 있었겠지만, 선지자 예레미야이기 이전에 인간 예레미야로서 당한 멸시와 거절감과 상처로 인해 참 많이 아픈 눈물을 흘려야 했을 것이다. 아무리 사명을 받고 걸어가는 길이라지만, 왕따 당하며 악의에 찬 공격을 받는 일은 스스로 고스란히 감당해야 할 자신의 몫이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몫이 아니라 예레미야 자신의 몫이었다. 그래서 참 힘들었을 것이다. 18절을 보면, 그가 어떤 상처를 받고 있는지 볼 수..

묵상&설교 2010.05.18

예레미야 16장10-21절 / 뜨거운 맛 보지말고 따뜻한 은혜를 맛보는 삶

생명의삶 QT 노트 여호와의 이름 알기에 담긴 2가지 의미 하나님의 이름을 아는 일에 2가지 경험이 있다. 하나는 뜨거운 맛을 보는 것이고, 하나는 따뜻한 은혜를 경험하는 일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는 여호와를 통한 심판을 경험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회복과 구원을 경험하는 일이다. 출애굽때 여호와의 이름을 아는 것은 양면을 가지고 있었다. 핍박하던 애굽은 여호와의 이름을 통해 죽을 고생을 했고, 핍박받던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이름을 통해 보호와 해방을 경험했다. 그러므로 먼저 꼭 기억해야 하는 것은 여호와의 이름을 경험하는 일에 2가지 상반되는 경험이 있다는 것이다. “뜨거운 맛을 볼 것인가? 아니면 따뜻한 맛을 볼 것인가?” 지금까지 하나의 패러다임은 이방이 뜨거운 맛을 보고 이스라엘은 따뜨한 맛을 ..

묵상&설교 2010.05.13

예레미야 15장10-21절 / 선지자의 딜레마와 소망

생명의삶 QT노트입니다. 선지자의 딜렘마 오늘 본문은 예레미야 선지자의 딜렘마가 나온다. 모든 국민의 염원과 기대와는 전혀 반대의 길을 걸어가야 하기에 모든 사람들에게 듣게 되는 비난과 저주앞에서 참으로 고통스러운 것이다. 10절은 그 고통은 “온 세계에서 다툼과 침을 당할자로 낳으셨도다. 다 나를 저주하는도다.” 오랫동안 우리도 들었다. “야 이놈아 모난 돌이 정맞는다고 했다. 절대 나서지 마라. 잘난척 하면 빨리 죽고, 조금만 비겁하면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 “조금만 비겁하면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 이 표현은 “힘들지만 바로 살아라”는 말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머리로는 동의하지 않지만, 삶으로 동의하며 살고 있다. 이런 분위기가 대세인 시대에 이 모든 것을 향해 거꾸로 산다는 것은 매우 힘..

묵상&설교 2010.05.11

예레미야 13장12-19절 / 교만과 영광

두란노서원 생명의삶 QT노트 술취함과 허세 나는 술에 취해본적이 없다. 그래서 술취한 사람들의 기분을 실감나게 이해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술을 먹지 않는 친구를 둔 동창들은 항상 술을 먹을때면 나를 불러냈다. 그리고 꼭 술값 계산을 맡겼다. 그리고 “예수 잘믿는 친구가 있으니 참 좋다고… 안주를 너무 먹는 것 빼고는…” 그때 친구들의 술에 취해 있는 모습은 현실로부터 잠시 벗어나고 싶은 도피임을 발견한다. 술이 깨면 현실로 돌아오는 것을 알지만, 한순간이라도 술을 의지하여 현실을 외면하고 싶어하는 모습을 발견한다. 그래서 술에 취하면 허세가 넘친다. “돈이 없어 카드가 없어 배짱이 없어” 물론 그 휴유증은 심각하다. 술취함은 허세와 만용을 낳고, 그 결과는 텅빈지갑과 터질것같은 청구서다. 술취함은 결국..

묵상&설교 2010.05.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