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브리스길라가 아름다운 4가지 이유

양치는선비 2010. 9. 15. 10:50

더 많은 평신도 성경교사 브리스 길라와 아굴라의 출현을 기대하며...

행 18:22-28  /  송병주 목사  /  선한청지기교회

 


첫째. 영향력의 사람, 브리스길라.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바울의 평생의 동역자들이었다. 부부라고는 알고 있는데, 성경퀴즈에서 "남편 이름은 무엇일까요?" 한다면 남편이 브리스길라라고 하기 딱 좋다. 늘 언제나 브리스길라의 이름이 먼저 나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뜻보면 남편이 브리스길라이고 아굴라가 부인처럼 여겨진다. 당시 어법상 항상 영향력과 지위의 측면에서 남편 이름이 먼저 사용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이 두사람의 이름이 사용될때면,  항상 아내였던 브리스길라의 이름이 먼저 사용되었다. 이것은 브리스길라가 남편을 존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비록 철저하게 남성 중심의 사회로 인식되는 당시 로마 사회였지만 여성 사역자로서 브리스길라의 영향력이 얼마나 컸는지 볼 수 있게해준다.

 

둘째. 이생의 자랑을 내려놓은 영적 낭만주의자, 브리스길라

 

놀라운 것은 아굴라는 유대인이다. 반면에 브리스길라는 유대인이 아닌 로마인이었다. 더구나 그녀의 이름은 로마의 명문가문인 브리스가 명문 가문 출신이다. 아굴라는 원래 노예 출신이었으나 후에 자유인이 되고 나서 브리스길라와 결혼한 것으로 전해진다. 두 사람은 결혼하기 전부터 그리스도인으로 개종한 사람들이었고, 특히 브리스길라는 명문가의 영광이나 로마인의 지위보다는 믿음으로 유대인 노예출신 아굴라와 결혼한 신앙의 사람이었던 것이다. 브리스길라는 이생의 자랑을 내려놓은 믿음의 낭만주의자였다

결국 그런 남편을 사랑했기에 행18:2처럼 글라우디오가 유대인을 이달리야로부터 쫓아내었기에 로마를 떠날 수 밖에 없는 삶이 되었다. 비록 사람에게 쫓겨난 삶이었지만, 그녀는 바울을 만나면서 사람에게 쫓겨난 삶을 하나님이 인도하신 삶으로 변화시켰다.  고린도까지 쫓겨왔지만, 그 절망적인 삶의 자리를 복음의 현장으로 바꾸었다. 절망의 삶의 자리를 복음의 현장으로 바꾸는 삶, 그것이 믿음의 삶이다. 제자가 되고 제자를 낳는 삶을 사는 결단할때, 최악의 삶의 자리도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는 현장이 될 수 있음을 브리스길라는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셋째. 바울의 말씀의 동역자

 

바울과 동역하였다가 고린도에서 다시 소요가 일어나고 바울이 고린도에서 쫓겨나는 것과 마찬가지인 상황이 일어났을때에도 브리스길라와 아굴로 부부는 바울의 수리아행을 함께했다. 사랑한 남편으로 인해 로마로부터 쫓겨나고, 자신이 존경하고 사랑한 바울로 인해 새로잡은 터전인 고린도마저 떠났지만, 브리스길라는 그 고통을 신앙의 거보로 전환시킨다. 쫓겨난 발걸음을 이제는 3차 전도여행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인간적으로는 2번의, 좌절일 수 있는 인생의 좌절이 바울의 3차 전도여행을 가능케하고 돕는 은혜의로로 삼은 것이다.  쫓겨난 발걸음을 절망과 한숨으로 터벅터벅 걸을 것인지, 그것을 복음의 진전을 향한 거보로 바꿀 것인지는 우리의 믿음이 결정한다. 참된 믿음의 사람은 절망할 수 밖에 없는 순간을 은혜의 통로로 바꾸는 사람들이다. 

이처럼 어려운 순간이 왔지만,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바울과 함께했다. 잘 될때 같이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가장 어렵고 힘든 순간을 함께하는 삶이 참된 동역자이다. 바울을 따라 나서는 일은 그나마 개척한 삶의 터전인 고린도를 다시 포기하는 일이다. 하지만, 아름다운 동역자 브리스길라는 희생보다 동역의 가치를 더욱 중요하게 붙든 것이다. 탁월한 말씀의 동역자 였을 뿐 아니라 가장 어렵고 힘든 순간에도 끝까지 함께하는 참된 동역자였던 것이다. 


넷째. 유대인 제사장을 가르치는 탁월한 말씀의 사역자 그 이상의 여인...

 

유대인 제사장 출신인 아볼로, 18:24에서 아볼로는 언변이 좋고 성경이 능통한 자라고 하며 일찍이부터 주의도를 배운자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사도행전은 브리스길라가 아볼로를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이르렀다고 전하고 있다. 결과 28절을 보니 아볼라가 성경으로써 공중앞에서 힘있게 유대인의 말을 이김이러라고 전하고 있다. 이처럼 이방 여인으로서 하나님의 도를 늦게 배운 평신도 사역자지만, 남자 유대인 제사장 출신 아볼로를 세우고 사역자로 세우는 하나님의 통로였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제사장을 잘 가르친 이야기를 넘어선다. 아볼로를 가르칠 만큼 탁월한 말씀의 사역자이기도 했지만, 더욱 아름다운 것은 자신은 숨고 아볼로를 훈련시켜 세우는 사람이었다는 점이다. 브리스길라는 내가 다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타인의 가치와 장점을 알아 그들을 세우는 사람이었다는 점이다. 탁월한 교사로서 그녀도 아름답지만,  아볼로가 큰 일을 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사람으로서 더 깊은 아름다움을 가진 것이다. 

 

맺으며. 더 많은 브리스길라의 출현을 기대하며

 

아름다운 교회에 더욱 필요한 일은 심장을 드린 아름다운 하나님의 여성사역자들이 일어나는 일이다. 거대한 조직과 세상의 편견을 뛰어넘는 해방운동보다 더욱 필요한 것은 여성 자신들이 스스로를 작게 여기지 않는 것이다. 그녀는 분명코 "작은 거인"이었다. 성령님은 브리스길라를 통해 바울의 3차 전도여행을 더욱 의미있게 하셨다. 브리스길라가 내려놓은 것을 붙들지 않고 살기를 여성사역자들에게 소망해본다. 브리스길라가 섰던 믿음의 자리를 마다하지 않기를 여성 사역자들에게 소망해본다. 더 많은 브리스길라를 통해 더 아름다운 동역이 교회안에서 풍성하기를 간절히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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