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병주 39

우연(偶然) 속에 필연(必然)을 보며

필연(必然)은 "사물의 결과가 반드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반대로 우연(偶然)은 "아무런 인과 관계가 없이 뜻하지 않게 일어나다"는 뜻입니다. 우연을 필연으로 과하게 만드는 일은 고대 소설의 한 특징이기도 합니다. 아시다시피 고대소설은 권선징악적 주제로, 결말은. 해피엔딩이면서, 사건 전개는 항상 우연성에 기초합니다. 우연에 기초한 부자연스러움과 전개의 도약은 몰입도를 떨어뜨리고 우리를 불편하게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필연이 사람의 우연으로 나타날 때 고대소설처럼 여겨지는 어색함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연이 꼭 고대소설의 특징만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필연적 섭리를 발견하는 복선이기도 합니다. 언뜻 보면, 룻기는 하나님이 하신 일로 묘사된 것이 없는 듯 보입니다. 모두 우연(偶然)입니다...

칼럼 2023.07.10

순례(巡禮)씨로 사는 삶

견디고 살아내는 사람들은 강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착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유은실님의 소설 "순례주택"의 주인공 순례씨가 나옵니다. 용인신문 백현주 기자는, 순례씨를 이렇게 소개합니다. 건물주 순례 씨는 “관광객은 요구하고 순례자는 감사한다”(99쪽)는 말을 가장 좋아합니다. 순례자처럼 살겠다는 생각에 이름을 순례(巡禮)로 개명하고 이를 몸소 실천하며 사는 순례 씨입니다. 힘들게 돈을 벌어 건물주가 되었지만, 그가 마련한 주택은 세입자들에게 몸의 보금자리뿐 아니라 마음의 보금자리가 되어주는 것을 봅니다. 세입자들의 마음을 헤아리며 소소한 일상은 날카롭지만 따뜻하게 담는 건물주 순례씨의 이야기는 참 아름답습니다. 삶에서 닥치는 어려움을 '실패'보다는 '경험'으로 여길 수 있는 순례씨입니다. 그래서 부와 명..

칼럼 2023.06.25

순교(殉敎)와 순양(殉羊)

하나님을 위해 순교하겠다고 하지 마세요 2기 사역을 마친 후 안식월을 시작하고 첫 주일을 앞두고 있습니다. 첫 주일에 보내는 설레는 마음, 그리고 담임목사 없이 첫 주일을 맞이하는 교회를 향한 그리움과 송구함이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그래서 짧지만 깊은 기도를 마음에 심고, 한 주간 마다 쓰기로 한 칼럼을 붙들어 봅니다. 젊은 신학도 시절, 목사 안수를 앞두고 저는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는 목사가 되고 싶어요" 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위해 "나의 생명을 드리니 주 영광 위하여 사용하옵소서" 고백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이를 받으시는 하나님의 마음은 좀 다르셨습니다. "나를 가장 사랑하는 목사가 되고 싶다는 사람들이 가장 무섭다. 너희는 사랑도 꼭 1등 해야 하니? 금메달 신앙, 금메달 목사 해야 하..

칼럼 2023.06.03

호세아 7장: 세련되게 지은 죄일뿐

본문 / 7장 전체제목 / 세련되게 지은 죄일 뿐 송병주 목사 (선한청지기교회) 세련되게 지은 죄일 뿐 이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미국 최고의 유명한 배우들 11명이 나와서 라스베가스 지하금고를 터는 이야기입니다. 얼마나 멋지게 작전을 짜고 최첨단 장비와 고도의 심리학과 지능싸움을 하는데, 거기다가 다들 어떻게 잘 생기고 미인인지, 나도 거기에 끼워줬으면 하는 마음이 생길 정도였습니다. 내가 들어가면 가 될텐데... 12사도중에 하나가 될 것처럼 여겨지더군요. 하지만, 결론은 무엇일까요? 도둑놈들입니다. 브래드 피트가 나오고, 조지 클루니에, 맷 데이먼, 그리고 줄리아 로버츠가 나와서 아무리 Cool 하고 멋지고, 첨단장비, 지능, 외모, 연기, 모든 면에서 천재적입니다. 하지만, 결국 세련되게 지은 죄..

묵상&설교 2013.07.24

연약함과 완악함

연약함과 완악함 송병주 (선한청지기교회) 하나님은 죄인들의 연약함을 인해 분노하시는 분이 아니라 의인들의 완악함을 인해 분노하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질문을 합니다. “사랑의 하나님이 어떻게 징벌하실 수 있느냐?” 그리고 많은 그리스도인들 안에서도 두려움이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소위 “이러다가는 하나님이 치실텐데…” 그래서 부끄러운 잘못과 죄를 지을 때마다 한 두번은 하나님 앞에 회개를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부끄럽고 미안해서 나가지 못합니다. 반복되는 고범죄로 인해 스스로에게 실망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반복되면서 사람들은 포기하고 싶어합니다. 하나님을 떠나면 이런 죄의식으로부터 해방되지 않을까하는 얇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얇은 생각을 강력하게 시행하기도 합니다.한 청년을 만났습니다. 교회..

칼럼 2012.04.13

2012 고난주간 특별새벽기도회 "십자가만 자랑하라"

2012 고난주간 특별새벽기도회 (특새) 갈 6장14절 십자가만 자랑하라.송병주 목사 (LA선한청지기교회) 들어가는 말 고난주간을 통해 우리는 계속해서 소품을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 담긴 의미, 그것이 우리에게 주시는 의미가 무엇인지 나누고자 합니다. 그래서 십자가만 자랑하는 삶이 무엇인지 나누고자 합니다. 십자가는 사형도구이다. 사실상 십자가는 분명코 사형도구입니다. 가장 참혹한 사형도구였습니다. 그래서 로마의 황제들은 “교양있는 로마인이라면 십자가라는 말을 입에 담는 일도 혐오스럽게 여겨야 할 것이다” 할 정도로 끔찍하게 여겼습니다. 만약 로마시대에 십자가 목걸이를 하고 다녔으면, 요즘 젊은애들이 귀신 문양과 해골문양이 새겨진 T-shirts..

묵상&설교 2012.04.07

게 12장 1-17절 / 이미 승리한 전쟁과 앞으로 남아있는 전쟁

요한계시록 / 생명의삶 / QT노트 송병주 전체적인 맥락 잡기 오늘부터 시작되는 본문은 지금까지 달려온 심판과 재앙의 속도를 더 높이기 보다는 약간 쉼표를 보여주고 있다. 일종의 드라마 중간에 들어가는 스토리처럼 지금까지 전개되어온 이야기와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 사이에서 숨고르기를 하며 정황 설명을 다시 해주고 있는 것이다. 재앙과 심판에 대해 숨가쁘게 달려왔다. 그러고나면 독자들을 위해서 왜 이런 심판이 이렇게 숨가쁘게 예언되어 왔는지 한번더 주위를 환기시키며 설명 해줄 필요가 생긴다. 오늘 본문은 그런 역할을 하고 있다. 마지막때에 일어나게 될 강력한 심판의 메시지를 전하고 나면, 사람들의 마음속에 질문이 생긴다. 도데체 왜 그런 심판이 필요한지 궁금해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봉인을 떼고 일곱 나팔..

묵상&설교 2010.12.07

계 8장 1-13절 / 일곱나팔의 이해

계 8:1-13 / 요한계시록 / QT / 생명의삶 / 송병주 서론 일곱 나팔은 이제 본격적인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되는 것을 볼 수 있다. 태풍 전야와 같은 숨고르기가 잠시 있고 나서 본격적인 징벌이 시작된다. 그런점에서 일곱 나팔은 재앙의 상징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오늘 본문을 보며 두려움과 공포에 떨어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 오늘 본문의 앞뒤 정황을 살펴보면,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공의의 회복으로 소망이 시작되었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봉인을 푸는 본문에서 말한 것처럼 계시록은 구약의 본문을 통해 이해해야 한다. 오늘 본문도 바로 구약을 잘 이해하면 두려움이 아니라 은혜의 통로임을 발견하게 된다. 심판은 악한 자에게는 징벌이지만, 의로운 자와 억울한 자에게는 소망이요 회복을 의미한..

묵상&설교 2010.12.01

계 5:1-14 / 봉인된 책 앞에서

요한계시록 5장 강해 / 생명의삶 / QT노트 / 송병주 목사 (선한청지기교회) 봉인된 책이 무엇인가? 봉인된 책이 무엇인지 정리하는 것이 우선 중요하다. 이 봉인된 책의 의미를 이해하려면 이사야29:9-14절을 꼭 정독할 필요가 있다. 사 29:11은 봉인된 책의 의미를 우리에게 잘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 봉인된 책이라면 좁게는 유다를 향한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를 말한다. 그리고 넓게는 앗수르와 애굽을 포함한 하나님의 포괄적 종말의 메시지까지포함한다. 이사야서는 당장의 심판의 메시지를 항상 예수의 재림으로 더불어 회복될 총체적 구속사적 확정으로연결시키는 특징을 갖고 있다. 당대의 심판과 회복도 이해하지 못하는 이스라엘이 재림으로 도래될 종말과 회복을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므로 ..

묵상&설교 2010.11.26

봉은사 밖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기에...

십자군의 정복이 아닌 십자가의 희생을 더 생각합시다. 송병주 봉은사 안에서 서로를 향한 깊은 상처가 있었다. 사람들은 봉은사 안에서 일어난 일에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필자는 봉은사 밖에서 일어난 일을 더 깊게 고민하고 싶다. 봉은사 밖에서 어떤 일이, 어떤 잘못된 가르침이 있었기에 봉은사 안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 봉은사 안에서 일어난 일에 대한 관심보다 그 밖에서 일어난 일을 다시금 고민했으면 한다. 잘못된 가르침과 오해가 이런 문제를 어떻게 만들게 되었는지 살펴보며 이번일이 무례를 벗는 계기가 되길 소망해본다. 봉은사 문제를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비판하고 있다. 필자 역시 동일한 아쉬움을 갖고 있지만, 이것을 더이상 "그들의 문제"로 그리고 그들의 "행위의 문제"로 여겨서는..

공감과유감 2010.1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