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나눔 17

신년특별새벽기도회 2 / 단 1:10-21 / 지혜로운 결단이 주는 믿음의 열매

주제: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꿈 (두번째 이야기) 제목: 지혜로운 결단이 주는 믿음의 열매 본문: 단 1:10-21 들어가는 말 지혜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유리하다 교만하지 않고 불리하다 비굴하지 않는 사람이다. 눈처럼 냉정하면서 불처럼 뜨거운 사람이다. 태산처럼 자부심을 갖되 누운 풀처럼 자신을 낮출 수 있는 사람이다. 사슴처럼 두려워 할줄 알며 호랑이처럼 사나울 수 있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다. 믿음의 길은 동시에 지혜로운 길이다. 그런데 우리 안에는 극단이 있다. “지혜를 추구하면 믿음이 약하고, 믿음을 추구하면 지혜가 약하다.” 하지만,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꿈을 가진 사람은 “강한 결단” 만큼이나 “깊은 지헤”를 추구하는 사람이다. 오늘 다니엘과 세 친구의 모습을 통해 결코 포기할 수 없..

묵상&설교 2011.01.06

예레미야 51장 41-53절 / 세상의 신은 가까이 있고 하나님은 멀리 보일때에도...

생명의 삶 / QT나눔 / 송병주목사 (선한청지기교회) 사노라면… 살다보면, 세상의 신은 내 눈앞에 보이고 하나님은 멀리 보인다. 세상의 왕국은 현실로 다가오고, 예루살렘은 신기루처럼 보일때가 있다.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기에, 하나님이 더이상 주인처럼 보이지 않을때가 있다. 바벨론의 신화가 믿음의 역사보다 위대해 보일때가 있다. 솔직히 나의 생활속에서 하나님은 아득한데 바벨론은 선명하다. 그래서 “저 멀리뵈는 시온성”을 보며 살아가는 것보다 “여기 가까이 뵈는 바벨론”을 의지하며 사는 것이 더 현실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오늘 말씀을 보면서 이렇게 도전하고 싶다. “눈앞에 보이는 바벨론이 아니라 저 멀리 뵈는 예루살렘을 바라보라.” 하나님의 사람들은 세상 신의 위대한 신화보다 크신 하나님의 구속사를 보아..

묵상&설교 2010.09.09

예레미야 51장 33-40절 / 고통스럽지만 기도할 수 없을때

생명의 삶 / QT나눔 / 송병주목사 (선한청지기교회) 고통스럽지만, 기도할 수 없을때 우리가 살다보면,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말할 자격이 없을때가 있다. 너무 고통스럽고 힘든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미안하고 죄송스러워 아뢰지 못할때가 있다. “내가 한 짓이 있어서, 고통스럽지만 미안하고 죄송스러워서” 그래서 고통스럽지만 기도할 수 없을때, 그럴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Cool하게 괜찮은척 폼 잡고 당해도 싸다며 가만히 있는 것이 옳은 것일까? 아니면 “아무리 잘못했어도 그렇지 어찌 이렇게 힘들게 하십니까?” 하며 목소리 높이고 더 세게 나가는 게 먹힐까? 아쉽게도 위의 두 방법은 “스스로 무덤을 파는 행동”이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일때 우리는 어떤 태도로 나아가야 할까? 오늘 본문에서 보게 되는 유대인..

묵상&설교 2010.09.08

예레미야 40장 1-12절 / 사랑받지 못해도, 밑바닥에서 시작해도...

생명의삶 QT 나눔 송병주 목사 (선한청지기교회) 국가의 위기앞에 2명의 지도자를 통해 리더십의 참된 모습이 무엇인지 발견한다. 사랑받지 못해도, 밑바닥에서 시작해도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는 삶이 참된 리더십일 것인다. 피할 수 없는 리더십의 자리에서 서 있기에 필자역시 심각한 부담을 안고 묵상해 본다. 힘들기에 외롭기에 더욱 걸어가는 길, 그것이 바로 리더의 길이다. 사랑받지 못하더라도 사랑하기로 결단하는 사람 오늘 예레미야를 보면서 발견하는 참된 리더의 첫번째자질은 “사랑받지 못하지만 사랑하기로 결단하는 삶”이다. 참된 리더는 “영원한 짝사랑을 결단한 사람”이다. “자신을 육적으로보호하는 것보다 백성들을 영적으로 보호하고 회복하는 일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삶”이 진정한 리더의삶이다. 포로로끌려가던..

묵상&설교 2010.08.11

히브리서 11장 1-7절 / 이상이 아닌 실상으로서 다르지만 한길로 가는 길, 믿음의 길

생명의삶 QT노트 송병주 목사 (선한청지기교회) 첫째. 믿음은 실상이요 증거이다. 믿음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은 매우 주관적이고 고백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오늘 읽은 히브리서의 본문은 믿음은 1절에서 실상이며 증거라고 말한다. 실상이라는 말은 “객관적 사실”이라는 헬라어이고, 증거는 법정 용어로서 판결을 결정짓는 객관성을 전제로 하는 말이다. 우리가 생각할때 믿음은 매우 종교적이고 내적인 자기 암시와 심적인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히브리서 기자는 정반대로 믿음이 얼마나 위대한 사실이며 법정 증거로 선택될 수 있는 것인지 계속해서 도전하고 있다. 믿음은 이상이 아니라 실상이며, 심증이 아니라 증거이다. 미국의 한 불임시술 산부인과 병원에서 기도와 질병의 관계를 두고 실험을 했다. 똑같은 불임문제를 ..

묵상&설교 2010.07.23

히브리서 9장 1-11절 / 새언약은 옛언약을 긍정하고 부정합니다.

생명의삶 QT노트 / 송병주 목사 (선한청지기교회) 1. 옛언약은 새언약을 통해 개혁되어야 합니다. 먼저 정리할 것은 옛언약과 새언약은 연결되어 있다. 새언약은 옛언약과 아무런 상관없는 전혀 새로운 것이 도입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옛언약은 실체는 아니지만 그림자로서 새언약을 바라보게 만들며 연결성을 갖고 있다.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은 단순히 과거를 부정하는 것만이 새로운 시작을 만든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는 과거로부터 단절이 아니라 과거로부터 연속성을 잊어선 안된다. 하지만, 옛언약과 새언약이 연속성을 갖는다고 해서 옛언약이 새언약을 종속하고 지배하는 구조가 되어선 안된다. 옛언약과 새언약은 연결되었지만, 새언약이 옛언약을 개혁하고 완성하는 구조가 성경적 원리이다. 10..

묵상&설교 2010.07.16

히브리서 5장1-10절 / "아론"같은 그러나 "멜기세덱"같은 대제사장

송병주 (선한청지기교회) 아론과 같이 예수님의 모습에 대해 첫번째로 소개하는 것은 아론과 같은 대제사장이라는 점이다. 4절에 대제사장으로서 예수님의 모습은 “아론과 같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자라야 할지니라.” 고 제시되고 있다. 이것은 예수님이 “사람의 연약함을 공감할 수 있는 존재”라는 의미에서 설명되고 있다. 2절말씀은 매우 강렬하다. “그가 무식하고 미혹된자를 능히 용납할 수 있는 것은 자기도 연약에 휩싸여 있음이라.” 너무나 가슴에 와 닿는 표현은 “연약에 휩싸여 있다”는 표현이다. 우리의 대제사장인 예수 역시 “연약함에 휩싸여 있는 존재”라는 것은 우리에게 큰 위로와 힘이 된다. 주의할 것은 이것이 열등하고 저급하다는 말이 아니라 인간의 연약함을 이해하고 공감하기 위해 철저히 비천과 무능의 자..

묵상&설교 2010.07.10

예레미야 28장12-17절 / 하나냐의 길 vs. 예레미야의 길

생명의삶 QT노트 / 송병주 하나냐: 하나님 없이 하나님의 일을 한 사람 하나냐는 어떤 사람인가? 이샤야의 제자로 많이 배우 사람이었고, 선지였으며, 애국주의자였다. 그는 탁월한 웅변과 Performance로 백성들의 환호와 갈채를 받았고, 이스라엘에게 희망을 준 사람이었다. 그는 어제 말씀처럼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처럼 보였고,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메신저였다. 모든 점에 있어서 그에게 부족함은 없다. 세계 최강대국 바벨론과도 싸울 수 있는 배포와 백성들에게 희망을 주는 사람이었다. 이처럼 모든 장점을 다가진 사람이었지만, 하지만, 그에게 딱 한가지가 없었다. 그것은 15절, “여호와께서 너를 보내지 않으셨다.”는 것이었다. 백성들에게 회복에 대한 믿음을 주었고, 그 믿음으로 최악의 상황의 ..

묵상&설교 2010.06.11

예레미야 24장1-10절 / 최악의 상황이 은혜의 통로가 됩니다

선한청지기교회 송병주 목사 생명의삶 QT노트 하나님의 관점과 우리 관점의 차이 유대 멸망기에 유대인들은 3가지 집단으로 분류되었다. 첫째는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이다. 너무나 머나먼 길로 포로로 잡혀가는 길에 죽을 가능성이 높으며 끌려가서 대부분 노예생활을 하게 될 사람들이다. 말 그대로 고향과 가족들과 떨어져 전쟁포로로 잡혀가는 비참한 인생들로 누가봐도 희망과 내일을 기약할 수 없다. 둘째는 첫째와 반대로 애굽으로 도피한 사람들이다. 당시 유대의 우방인던 애굽행이 가능했던 것을 볼때 아무래도 사회적인 지도자 급으로서 친 애굽파들이다. 애굽에 인맥이 형성되어 있고, 나름대로 멸망기에 집과 땅과 권력은 잃어버렸지만, 목숨을 보존했고 우방인 애굽으로 피신했으니 최고로 잘 풀린 사람들이다. 마지막으로..

묵상&설교 2010.06.01

예레미야20장1-6절 / 두 갈래길에서 "예레미야의 길 vs. 바스훌의 길"

생명의삶 QT노트 두갈래 길 앞에서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2명의 예언자가 걸어가는 유사하지만 전혀다른 2갈래 길을 볼 수 있다. 성전의 감독관이었던 바스훌과 열방의 감시자였던(렘1:10)였던 예레미야, 평강의 예언자였던 바스훌과 심판의 예언자였던 예레미야의 2갈래 길을 보게 된다. 우리 인생 앞에도 항상 두갈래 길이 있다. 예레미야의 길과 바스훌의 길… 그 두갈래 앞에서 우리의 신앙은 결정된다. 주의할 것은 이것은 불신의 길이냐 신앙의 길이냐가 아니다. 신앙의 길을 걷고 있는데, 선지자의 길, 제사장의 길을 걷고 있다면 당연히 예레미야의 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해다. 이 두 갈래길은 신앙인과 불신앙인의 두 갈래길이 아니다. 신앙인으로서 선지자로서 신앙의 지도자로서 어떤 두 갈래의 길을 선택할 것인..

묵상&설교 2010.0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