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순교(殉敎)와 순양(殉羊)

양치는선비 2023. 6. 3. 23:56
하나님을 위해 순교하겠다고 하지 마세요

 

2기 사역을 마친 후 안식월을 시작하고 첫 주일을 앞두고 있습니다. 첫 주일에 보내는 설레는 마음, 그리고 담임목사 없이 첫 주일을 맞이하는 교회를 향한 그리움과 송구함이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그래서 짧지만 깊은 기도를 마음에 심고, 한 주간 마다 쓰기로 한 칼럼을 붙들어 봅니다.
 
젊은 신학도 시절, 목사 안수를 앞두고 저는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는 목사가 되고 싶어요" 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위해 "나의 생명을 드리니 주 영광 위하여 사용하옵소서" 고백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이를 받으시는 하나님의 마음은 좀 다르셨습니다.
 
"나를 가장 사랑하는 목사가 되고 싶다는 사람들이 가장 무섭다. 너희는 사랑도 꼭 1등 해야 하니? 금메달 신앙, 금메달 목사 해야 하니? 천국에 기네스 북은 없어!" 그리고 오히려 하나님은 전혀 다른 도전을 마음에 하셨습니다. "날 위해 목숨을 던지겠다고 하지 말고, 내가 내 아들이 십자가에 죽기까지 사랑한 내 양들을 위해서 생명을 드리겠다고 하면 안되겠니?"
 
세월이 흘러가며 숨긴 속내를 들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생명을 드린다면, "하나님을 위해 드릴 수 는 있어도 죄인들을 위해 낭비하고 싶지 않다"는 속내 말입니다. 
 
예수님을 생각하고 불현듯 깨달았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이 아니라, 소망없는 죄인들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정말 마음이 쿵 했습니다. 종교는 신을 위해 백성이 죽습니다. 하지만, 복음은 백성을 위해 하나님이 죽었다는 소식입니다. '순교(殉敎)' 아니라 '순양(殉羊)'이었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천황 폐화를 위해 자살특공대 가미가제가 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차라리 기독교 신앙은 폭력과 총칼에 죽어가는 인디오 원주민들을 위해 함께 죽었던 가브리엘 신부의 넬라판타지아 선율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위해 칼을 뽑던 베드로는 꾸짖으셨습니다. "나를 위해서라고 하며 칼을 뽑지 말라. 나를 위해 타인의 생명을 상하게 하는 칼을 뽑지 말라. 타인을 죽이는 칼을 뽑는다며 목숨을 걸지 말라. 오히려 나를 죽이려는 자들을 위해 목숨을 드리라!"는 마음을 전하십니다. 그리고 제자 베드로가 휘두른 칼에 귀가 잘린 불신자 말고의 귀를 다시 붙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치유는 수제자 베드로가 언필칭 "예수님을 위해서" 목숨걸고 휘두른 칼에 다친 자기를 죽이러 온 불신자를 고쳐주신 일입니다. 주님을 위해서... 우리가 휘두른 칼... 기독교를 위해서... 세상을 향해 우리가 휘두른 칼... 주님은 당신을 위해 휘두려는 우리의 칼을 거두라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칼날에 다친 세상을 치유하십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고 하신 후 어떠한 모습으로 순교자의 길을 갈 것인지 말씀하셨습니다. 양을 먹이고 양을 치는 길이 곧 생명을 드리는 여정이었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느니라"는 하신 말씀처럼 말입니다. 목숨은 하나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양들을 위해 버리라 하셨습니다. '순교(殉敎)'는 '순양(殉羊)'입니다.
 
2기 사역을 마치고 돌아보며, 목사 안수 받을 때 주님 주신 이 마음을 다시 붙들어 봅니다.
 
알카에다 보다 더 강한 십자가 전사가 되려고 하지 말아야 겠습니다. 종교와 교리와 신념을 위해 백성을 죽여서라도 신에 대한 충성을 과시하려고 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주님은 제자들이 언필칭 "예수님을 위해" 칼을 뽑는 근본주의 전사가 되기를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강한 종교'가 아니라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한 서시(序詩)와 같은 '미련한 복음'을 원하십니다. 주님은 '강한 십자군'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미련한 십자가의 도'를 원하셨구나... 탄식하듯 고백하게 됩니다. '죽여서' 이루려 하지 말고, '죽어서' 이루어야 겠습니다.
 
신을 위해 생명을 드리겠다는 사람들은 뜨겁지만 무섭습니다. 하지만, 양들을 위해 생명을 드리겠다는 사람들은 그저 따뜻하더군요. 그래서 고백합니다. 그저 따뜻하고 싶습니다... 따뜻한 사람이 되고 애틋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주님을 위해서 라며 칼을 뽑지 말고, 주님처럼 말고의 귀를 치유해야 겠습니다.
 
제가 가야 할 길을 다시 봅니다. 종교가 아니라 복음을 살고 싶습니다. 그리고 삶의 한 절이라도 선한 목자되신 주님 닮아가는 제자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함께하는 댓글이 힘이 됩니다"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순례(巡禮)씨로 사는 삶  (4) 2023.06.25
내려놓음에서 내려놓게 됨 그리고...  (6) 2023.06.12
청년사역: 강건너 불 or 발등이 불  (0) 2012.05.12
연약함과 완악함  (2) 2012.04.13
위대함과 소박함  (0) 2011.03.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