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내려놓음에서 내려놓게 됨 그리고...

양치는선비 2023. 6. 12. 18:44

참된 '내려놓음'을 위해서는 '맡겨드림'이라는 믿음과 용기가 필요 합니다. 맡겨드림이 내려놓음이 될 때, 내려놓음은 의미가 있습니다.  맡겨드림 없는 내려놓음은 둘 중에 하나입니다. 자포자기 아니면 이 또한 자기 의를 드러내는 또다른 방법이 될 수 도 있습니다. 
 
제가 우려하는 것은 '자포자기성 내려놓음 보다 자기 의의 실현으로서 내려놓음'입니다. 많은 분들이 영성의 이름으로 내려놓음을 결단하려 합니다. 만약, 내가 내 힘과 의지로 내려놓음을 실현할 수 있다면, 그건 내가 내 힘과 의지로 뭔가 해 내겠다는 것과 차이가 없습니다. 이 또한 다른 모습의 자기 의가 됩니다. 타인 이야기가 아니라, 저 자신이 내려놓음을 위해 애쓰다가 알게 된 제 못난 속내였습니다. 
 
"주님 제가 다 내려놓아야 하는데, 그게 잘 되지 않습니다. 제 자아가, 제 상한 자존심과 억울함 그리고 강한 분노가 여전히 저를 주장하고 부추깁니다. 그리고 자꾸 변화시키고 바꾸어 놓고야 말겠다는 욕심이 저를 부추깁니다. 이런 마음 다 내려놓게 해 주십시오." 뭔가 해 내겠다고 애쓰다가 아니라는 것을 발견하고 난 다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더 내려 놓겠다고 애쓰는 자신을 보며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전혀 다른 방향이었지만, 결국은 "내가 한다"는 속내는 같았습니다.
 
해 내겠다는 생각을 내려놓음으로 자기 비움을 이루고, 변화시키겠다는 의지를 내려놓음으로 자기 비움을 이루고 싶다고 탄식하다가 속내를 들켰습니다. 내려놓음 만으로도 부족하고 더 내려놓음이 필요하다 생각하다가 그만 숨바꼭질 하다 술래에게 잡힌 아이처럼 속내를 들킨 마음이 화들짝 놀랍니다. "내려놓음 조차 내가 하려고 들었구나..." 탄식과 함께 얕은 속내가 바닥을 드러내더군요. 온전한 맡겨드림 없는 내려놓음은 저에게 영성이란 이름의 또다른 위선이었습니다. 
 
이렇게 "내려놓음도 자기 의가 될 수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질문을 던지다가 불현듯 깨닫습니다. "내려놓음의 능동태가 아니라, '내려놓게 됨'의 수동태가 필요하다!" 십자가 사랑과 부활의 은혜, 그 불가항력적 은혜에 압도 당한 사람은 내가 모든 것을 "내려 놓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오직 내려 놓게 되었을 뿐입니다. 두 손 높이들고 무릎꿇어 엎드릴 수 밖에 없었던 '내려 놓게 됨' 말입니다. 내려놓음의 능력이 아니라 내려놓게 됨의 설복당하는 은혜였습니다. 
 
안식월을 맞아 2주차 주일을 앞두고, 내려놓음의 영성을 구하는 저에게 주님은 내려놓음의 영성에 이를 것이 아니라 불가항력적 은혜 앞에 서야함을 말씀하십니다. 결국 '내려놓음의 능력'이 아니라 '내려놓게 됨의 은혜'를 알게하셨습니다. 저에게 필요한 것은 능력이 아니라 은혜 였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질문을 던집니다. "그렇다면 불가항력적 은혜는 내려놓게 됨의 자리에 계속 저를 머무르게만 하나요?" 이에대해 이어지는 하나님의 마음에 깨달음을 얻습니다. "불가항력적 은혜는 모든 것을 내려 놓을 수 있게 하며, 동시에 모든 것을 할 수 있게 한다" 그래서 고백합니다. 이제는 "내려 놓게 됨에서 할 수 있게 됨으로“ 그 여정이 이어지는구나.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면서 동시에 다시 모든 것을 할 수 있게 만드시는 이 놀라운 역설의 신비로 이끄심을 봅니다. 
 
안식월 2주차를 주일을 맞으며, 은혜로 말미암은 내려 놓게 됨의 수동태를 누리고자 합니다. 카이로스의 때가차매, 하나님은 기필코 은혜로 말미암은 모든 것을 할 수 있게 하시는 능동태로 이끄실 줄 믿습니다. "우리 기필코 승리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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