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순례(巡禮)씨로 사는 삶

양치는선비 2023. 6. 25. 12:45

 

견디고 살아내는 사람들은 강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착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유은실님의 소설 "순례주택"의 주인공 순례씨가 나옵니다. 용인신문 백현주 기자는, 순례씨를 이렇게 소개합니다. 건물주 순례 씨는 “관광객은 요구하고 순례자는 감사한다”(99쪽)는 말을 가장 좋아합니다. 순례자처럼 살겠다는 생각에 이름을 순례(巡禮)로 개명하고 이를 몸소 실천하며 사는 순례 씨입니다. 힘들게 돈을 벌어 건물주가 되었지만, 그가 마련한 주택은 세입자들에게 몸의 보금자리뿐 아니라 마음의 보금자리가 되어주는 것을 봅니다. 
 
세입자들의 마음을 헤아리며 소소한 일상은 날카롭지만 따뜻하게 담는 건물주 순례씨의 이야기는 참 아름답습니다. 삶에서 닥치는 어려움을 '실패'보다는 '경험'으로 여길 수 있는 순례씨입니다. 그래서 부와 명예를 위해 발버둥치지 않아도 사람은 충분히 아름답다고 여겨지는 캐릭터입니다. 그래서 '괴롬과 죄가 있는 곳'에서도 '빛나고 높은 저 곳'을 바라볼 수 있는 아름다운 이름, 바로 순례(巡禮)... 입니다. 
 
벌어서 남주자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환대의 삶을 보며, 순례(巡禮)는 성도의 또다른 이름입니다. 순례... 촌스럽다고 할 수 없는 삶의 깊이가 담깁니다. 요즘 많이 되새김질을 해 봅니다. “관광객은 요구한다. 그러나 순례자는 감사한다”(Turistas manden; peregrinos agradecen). 많은 곳을 방문하며 질문해 봅니다. "나는 요구하는 관광객인가? 감사하는 순례자인가?" 그리고 다시 질문하게 됩니다. "교회 안에서 성도로서 우리는 요구하는 관광객인가? 아니면 감사하는 순례자인가?"
 
안식월을 하면서 여러 장소를 방문합니다. 하지만, 그 장소의 의미는 사람에게 달려 있었습니다. 14년만의 아내의 방문속에 언니들을 14년만에 만나고 어른이 되어 버린 조카들을 만나면서, 장소 보다 사람이 의미를 결정한다는 것을 새삼 느낍니다. 늘 익숙하던 곳이지만, 사람이 떠나고 없으면 그 장소는 낯설더군요. 그 장소가 가진 의미도 옛날 어느날 사랑하는 사람과 보낸 추억 때문이지, 그 장소 자체가 의미를 갖기 어렵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그저 휑한 것을 알면서도 찾아가게 되는 것은 그곳에 누군가와 함께 있었던 추억 때문이었습니다. 
 
세월 속에 많은 것이 변했더군요. 익숙한 장소가 낯설고 처음 간 곳 같았습니다. 하도 변해서 내가 알던 곳이 아니더군요. 장소만 변하는게 아니라 사람도 많이 변하더군요. 장소 많큼 많이 변해서 내가 알던 사람이 아닌 경우도 있었습니다. 변화되는 사람부터 변질된 이, 숙성되는 분과 상해 버린 이, 성장하고 성숙한 분과 성장만 한 이도 봅니다. 여전히 한결같은 분과 도무지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는 이도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의 고통을 보기에 견디고 버텨주는 것만으로 고마운 분들도 있더군요. 눈물과 한숨 속에서도 미소와 기도를 포기하지 않는... 착한 사람들... 모질고 독해서, 강해서가 아니라 착해서 버티는 분들을 봅니다. 희망이 있어서 보다, "나 마저 절망하면 안되니까... 난 엄마니까..." 그래서 버티고 견디고 살아내는 모습을 봅니다. 제 한 몸 건사하고 살아 내기가 쉽지 않음에도, 환대의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는 모습을 보며, 또다른 순례씨의 모습을 봅니다.
 
순례는 넉넉한 곳간 인심에서 나오는게 아니라, 착하게 살아내는 사람들이 가진 긍휼에 있음을 봅니다. 내가 아프니 남의 아픔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난하니 남 돌봐줄 여유가 없는게 아니었습니다. 내가 아프니 타인의 눈물과 함께 울게 된 사람들, 내가 가난하니 타인의 속 썩는 마음에 같이 동동 발구름을 하게 된 사람들이었습니다. 옛 사람들이 그랬다지요. 동냥 나온 거지들도 알았답니다. "부자 집의 밥은 씻어서 먹어야 하나, 가난한 사람이 준 밥은 그냥 먹어도 된다." 부자는 버릴 밥을 주어서 상할 수 있지만, 가난한 사람은 먹는 밥 나누어 주었기 때문이라 합니다. 넉넉한 곳간만이 순례씨를 만들지 않습니다. 긍휼의 마음이 순례씨를 만듭니다. 
 
착한 순례씨들을 만나며, 내 마음에서 울려오는 소리를 듣습니다. "강하지 않아도 되! 착하면 되!" 모질어서도 아니고, 강해서도 아니라, 그저 한 없이 착한 사람들이 포기해도 남들이 뭐라하지 못할텐데,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그 자리 지키는 모습을 봅니다. 그저 착해서... 고통의 세월을 이기고 눈물 지으면서도 미소를 품고 순례의 인생길을 살아내는 것을 봅니다. 그래서 다시 되새깁니다. “관광객은 요구한다. 그러나 순례자는 감사한다”(Turistas manden; peregrinos agradecen). 순례씨의 또 다른 모습을 만납니다. 
 
그래서, 순례자로 살아가는 길, 몸의 보금자리 되어주고, 마음의 보금자리 되어주는 촌스러운 순례(巡禮)씨로 살아가는 길을 꿈꾸어 봅니다. 
 
또 다르게 놀란 것이 있습니다. 장소도 변하고 사람도 변하는데, 슬프도록 아름다운 자연은 변하지 않는 의미였습니다. 사람이 만든 공간은 의미가 퇴색되고 변색 되지만, 하나님이 만든 공간은 사람이 있든 없든, 추억이 있든 없든 새롭고 다양한 의미로 넘쳤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은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간을 넘어 의미입니다.
 
불현듯 소망하게 됩니다. "우리가 만든 장소를 지키는 찾고싶은 사람이 되고도 싶지만,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 같은 공간이면 좋겠다." 분명코 사람이 만든 공간이 교회, 사람으로 인해 의미가 있습니다. 사람이 의미가 되는 교회도 너무 소중합니다. 하지만, 교회가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과 같다면 더 의미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래서 바램을 적어봅니다. "사람이 의미로 남는 교회라는 공간이 되었으면 하면서도... 하나님이 만드는 자연 같은 공간이 교회이면 더 좋겠다"
 
세월이 가도 의미로 가득하고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가는 그런 사람, 그런 교회가 되길 꿈꿔 봅니다. 순례씨로 살아가는 여정... 삶 속에 자연속에 깃든 순례씨가 되길 소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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